[TV평] 아버지 깊은 사랑 뭉클
기사입력 2000년 02월 08일 14시 19분
설 연휴 특집의 홍수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프로였다.
극본과 연출에는 절제와 균형미가 넘쳤다.
`백정의 딸'(극본 박정란, 연출 이현직)은 `신분사회' 타파의 목소리가 높았던 1900년초 백정 일가족의 얘기였다.
드라마는 백정(이정길)의 단순 과격함으로 시작된다. 자식들 앞에서 아내(이휘향)를 매질하고, 전염병에 걸리자 숨도 꺼지기 전에 아내를 성문밖에 내다 버린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어린 딸은 아버지에게 돌을 던진다.
그 뒤 학당에서 신교육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부정한 베드로처럼 딸(추상미)은 `나는 백정의 딸이 아니다'고 강변한다.
어머니는 소학교 운동회에서 `백정각시'라는 짐승보다 못한 수모를 당한 뒤 목을 매고, 아버지는 딸이 의원 도련님을 사랑한 죄(?)로 의원사람들의 도끼질에 의해 한쪽발이 잘린다.
백정은 아내를 위해 평생 모은 돈으로 꽃가마를 만든다. 또 다리가 잘려나간 뒤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 너희들 수모를 다리 한쪽으로 갚을수 있다면 나머지 한쪽은 못 내놓을까."
비로소 딸은 `다른 방식'의 부정에 눈뜬다.
아버지를 부정했던 딸. 학당 졸업식장에서 대표연설을 한다.
"제 아버지는 백정이십니다. 저는 백정의 딸입니다."
`백정의 딸'은 그 시대에 흔히 있는 실화지만 드라마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또다른 차별은 없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깨어있는 딸 옆에서 부부행위를 하는 장면이나, 추상미의 연갈색 염색머리가 드러난 것은 `옥의 티'.
하지만 딸이 부정을 깨우쳐 가는 과정이나 신분사회에 맞서는 `용감한 지식인'의 작은 목소리는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이유현 기자 youle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