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무라이 픽션'] 'N세대 눈높이' 맞춘 코믹 활극
기사입력 2000년 02월 08일 13시 57분
유쾌하다. 사정없이 웃음이 터지는 장면 5∼6번. 시종일관 배시시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얘기가 웃긴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형식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이다.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의 데뷔작인 `사무라이 픽션'.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사무라이극이다. 전체적으로 흑백화면이지만 살상이 일어날때만 붉은 색이 가미되는 식이다. 재치가 넘친다.
97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데이라잇'의 뮤직비디오로 미국 MTV어워드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나카노 감독은 뮤직비디오에서 익힌 기술을 제대로 발휘했다. 3년이라는 오랜 기간 공을 들인 끝에 현대적인 음악과 최신 테크놀로지를 엮어 일본 전통의 사무라이극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우선 유명 밴드인 `BOΦWy'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도모야스의 음악. 죽여준다. 기타 리듬에 맞춰 춤추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 경쾌한 편집이 빛난다. `로큰롤 사무라이 무비'답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사무라이 영화 마니아였다'는 나카노 감독은 기존 통념을 과감히 허물어버린다. 선한 사무라이와 악한 사무라이의 대결, 위기에 처한 보통 사람을 구하는 영웅 등 사무라이 영화의 법칙에서 일탈을 시도했다.
이야기는 1999년 현재에 존재하는 주인공 헤이지로의 내레이션으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1696년 나가시마 지역 사무라이 칸젠의 아들 헤이지로(후키코시 미츠루)가 에도에서 검술 수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즈음 집안에 소동이 일어난다. 장군가로부터 전수받은 검을 지키려고 고용한 카자마츠리(호테이 도모야스)가 검을 빼앗아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헤이지로는 친구들과 함께 카자마츠리의 뒤를 쫓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선과 악의 구분은 흐려진다. 영웅도 존재하지 않는다.
카자마츠리가 보검을 훔치게 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도 우연의 연속이다. 주인공 헤이지로는 착하긴한데 바보 같아서 하는 일마다 사고다. 헤이지로가 검의 달인 한베이를 만나 카자마츠리를 물리치기 위해 기껏 배우는 것도 돌팔매질이다. 여기에 유명 코미디언인 타니 케이가 연기한 카게마루 등 만화적 캐릭터들이 더해져 엮어내는 코믹한 상황이 이어진다. `만화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제2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부천초이스' 수상. N세대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마음껏 즐길 수 있다. (19일, 서울 명보 시네코아)
[전상희 기자 fro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