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쇼로 전락한 일본 스모 (2)
기사입력 2000년 02월 07일 14시 01분
지금까지 배출된 요코즈나는 약 70명. 현재는 4명의 요코즈나가 일본 스모계를 주도하고 있다.
4명의 요코즈나 중 2명은 미국출신 하와이계 일본인인 아케보노와 무사시 마루다. 나머지 2명은 와카노하나와 다카노하나 형제. 아케보노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요코즈나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스모협회에 의한 공식적인 기록은 분명히 아케보노가 외국인 요코즈나 1호로 돼 있지만 이것은 단지 일본 스모협회가 만든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진짜 외국인 출신 요코즈나 1호는 바로 재일동포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애써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니 용납하기가 싫은 것이다.
과거 일제 식민지시대. 당시 일본인들은 한반도 각지에서 씨름 잘하는 조선인들 중 몸이 건장한 청소년들을 일본으로 데려왔다. 전문적인 스모선수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전후 일본 프로레슬링을 창설해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된 역도산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동네씨름 대회에서 우승하여 황소를 탄 것이 계기가 돼 스모흥행업자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오게 됐다.
역도산의 본명은 김신락. 이북출신으로 그의 나이 열 여섯에 부모몰래 스모흥행업자를 따라 일본에 건너왔다. 그리고는 일본인으로 귀화한 뒤 곧바로 스모계에 입문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으면 스모계 입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 `조센진' 역도산은 혹독한 차별 속에서도 온몸이 부서져라 훈련했다. 쓰러지면 일어나고 쓰러지면 또다시 일어나 모래위를 뒹굴었다. 그러는 사이에 승률이 높아지고 체급도 한단계씩 올라갔다. 요코즈나의 자리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조선인은 어디까지나 조선인일뿐이었다. 일본인으로 귀화를 했다고 해서 일본인이 되는게 아니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비록 귀화인일지라도 똑같았다. 죽어라고 열심히 해도 요코즈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역도산은 한없는 기다림에 지쳐 요코즈나의 문턱에서 스모를 포기했다. 조선인 출신에게는 절대로 요코즈나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일본스모계의 암묵적인 원칙때문이었다.
대신 역도산은 미국의 상업적인 레슬링을 보고 힌트를 얻어 일본 프로레슬링을 창설했다. 격렬한 격투기인 레슬링은 당시 패전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국민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일본을 폐허로 만든 미국의 덩치 큰 백인들을 매트위에 사정없이 내동댕이 칠 때는 일본인 모두가 TV앞에서 역도산을 외쳤다. 역도산의 손놀림 하나하나에 일본인들은 울다가도 웃었다. 보수적인 스모계에서 대중 프로레슬링으로 선회,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뚫고 일궈낸 대성공이었다.
한편 보수적인 스모계에서도 조선인들의 입문은 계속 이어졌다. 해방 후 상황은 역도산 때와는 전혀 달랐다. 대부분이 재일동포나 재일동포 2세출신이었다. 일제시대때 스모를 위해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오던 것과는 다른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외국인 최초의 요코즈나는 다마노우미. 그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였다. 본명은 윤이기. 재일동포들의 집단취락지인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태어나 아이치현 가마고리시에서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 유도부에서 활동하다 흥행업자의 눈에 띄어 스모계에 입문했다. 그도 역시 스모계의 요구대로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튼튼한 하체를 가진 그는 유연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한 허리기술이 장기였다. 피는 못속이는지 스모를 하는데도 씨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다마노우미의 허리기술은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그가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그의 한국인 아버지 모습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반면 일본인 어머니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가 드디어 제 51대 요코즈나에 등극했을 때 아버지 윤씨는 죽은 것으로 돼 있었고 어머니만 살아 있었다. 그리고 죽은 아버지는 어느새 일본인으로 알려졌다.
지난 97년 2월 나는 공식적으로는 `사망처리'된 그의 아버지를 가마고리시에서 만났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