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남자] 투쟁 (10)

기사입력 2000년 02월 06일 15시 02분

"우리가 너무 성급했어."

이대진이 말하고는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회의실에는 팀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감시 카메라가 철거된 후부터 회의실의 분위기는 바뀌어졌다.

물론 기획실에서는 처음부터 감시 카메라가 없었다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지만 내부 벽지까지 모두 바꾼 것을 보면 신빙성이 떨어졌다. 이대진이 말을 이었다.

"후쿠오카 오더를 취소시키고 호선생한테 한달쯤 후에 싱가포르에서 신용장을 다시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까지 제품을 만들어 놓았다가 신용장이 개설되자마자 싱가포르로 실으면 끝나는 거야."

"그것을 외교부 과장이 조언해 주었단 말입니까?"

오성호가 확인하듯 다시 묻자 이대진이 웃음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 사람은 상부에다 후쿠오카 오더를 취소시켰다고 보고할 거야."

"그 사람 마음에 드는데요."

정현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백실장이나 사장한테 압력을 넣었다면 간단하게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나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 요소에서 소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에 보람이 있다."

"이 일이 윗선에 알려지면 그 사람도 위험하겠죠?"

"물론이지. 그리고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싱가포르를 거쳐 타이페이에 도착해야 끝나는 거야."

그러나 회의실의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담당자인 김영만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큰 것은 KPS형 5만개 물량의 금액이 2000만 달러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절반이 김영만의 실적이 된다.

"호선생은 어떻게든 그 참사관놈을 제거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김영만의 활기띤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저한테 어제 참사관 위자영의 스위스 비밀구좌 내역까지 알려 주었거든요."

"얼마나 있대요?"

서미영이 궁금한 듯 묻자 힐끗 이대진의 눈치를 살핀 김영만이 입을 다물었다.

"난 말 못해."

"말해봐요. 300만 달러? 500만 달러?"

"젠장. 통도 크네. 이 여자."

그러자 오성호가 헛기침을 했다.

"오늘 저녁에 팀 회식이 있는 것 알지? 7시 30분까지 화원으로 모이도록."

회의를 마친 이대진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차만석이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보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업무 이야긴가?"

"그렇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이대진이 오성호를 보았다.

"자네도 남아."

팀원들이 회의실을 나가고 셋이 남았을 때 차만석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보스가 박대리 가족에게 거금을 준 것을 백경일이 지금도 캐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가 먼저 정보를 준 것입니다만."

시선을 내린 차만석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돈이 공장에서 리베이트로 받은 돈일리는 없다고 합니다. 콜롬비아에서 제품값으로 받은 돈이 틀림없다고."

그러자 오성호가 혀를 차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전혀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네하고 정현희, 김경만이 은행에서 환전한 증거까지 있다는 거야."

"이런 빌어먹을."

오성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이대진을 보았다.

"보스, 급하게 환전을 하려다 보니까 제가 직원들하고 5만달러씩 나눠 은행에서 환전했습니다. 나머지는 암달러 상인들 한테서 환전했구요. 금액이 커서."

그것까지 백경일은 조사를 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