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반칙왕'] '레슬링이 쇼라구요? …사는게 쇼야!'
기사입력 2000년 02월 01일 15시 18분
현대인은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지리한 일상을 벗어나 그 밖에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 보고 싶은 것이다.
봄영화사 창립작품인 `반칙왕'(김지운 각본, 감독)은 샐러리맨이 일상을 탈출, 일상 밖에서 바라본 일상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은행원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희비극적인 드라마로 버무려 관객들을 시원하게 웃겨 줌과 동시, 가슴을 파고들어 `눈물 한방울'을 흘리게 만들어준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일상에 지친 은행원 임대호(송강호). 지각대장으로 지점장 강재구(송영창)로 부터 헤드락을 당하면서 비감스런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던 그가, 우연히 반칙 레슬러가 되면서 펼쳐나가는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축.
엉뚱하고 소심한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레슬러가 되어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이이러니와 페이소스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가슴 찡하게 관객들과 만난다. 특히 웃음은 현대인의 비애를 역설적 표현이다.
`조용한 가족' 이후 두번째 연출을 맡은 김지원은 한층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였다. 링이라는 사각의 공간을 통해 고독한 파이터로 살아가는 일상인의 모습을 코믹터치로 그려냈다. 현실에서 억압받고 상실해가는 것을 반측을 통해 정상으로 되돌려 보려한 의도가 신선했다.
현장감을 잘 살린 연출감각으로 만들어낸 레슬링 시합 장면은 압권이다. 리얼리티가 화면에서 살아나온다. 여기엔 초당 360 프레임을 찍는 초고속카메라 포토소닉 4ER의 역할도 컸다. 자유 자재한 카메라 워크는 리얼액션을 그대로 전달했다.
촬영감독 홍경포의 도전적인 화면 만들기와 조명감독 정영인의 색채감은 볼만한 영상미학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다양한 음악은 작품에 힘을 불어 넣는다.
매력덩어리 송강호는 뛰어난 순발력과 연극에서 닦은 저력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이 작품을 이끌어가며 관객들을 극속으로 빨아들였다. 그의 흡인력은 연기력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앞으로 그의 장래가 무척 밝다. 대역을 거의 쓰지 않고 한 장면 찍고 쓰러지고 또 찍고 쓰러지는 반복적인 촬영을 강행한 그의 `배우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조연의 활약은 눈부시다. 장진영의 신선미, 장항선의 안정감, 송영창의 변신, 박상면과 이원종의 능청스런 연기, 정웅인 김수로의 무게감이 작품에 빛을 더했다.
다만, 엔딩 부문에 주인공 임대호가 지점장에게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화끈한 복수를 기대한 관객들은 `너무 예술적인 피날레'에 만족해야 했다. 양념도 조금 뿌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예감이 좋은 영화다. 극중 장한선의 대사가 머리를 스친다. "레슬링이 숀줄 알어? 인생이 쇼야, 임마..." 쇼같은 일상인의 인생을 깜찍한 발상으로 보여준 우리 영화다.
[문화부장 eastse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