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한국야구와 일본야구
기사입력 2000년 01월 31일 14시 30분
얼마 전 한국 신문에는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서 뛰고 있는 이종범에 대한 기사라 일제히 실렸다. 이종범이 호시노 감독에 대해 대단히 화가 났다는 보도였다. 이종범을 1군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말한 호시노 감독의 말이 발단이었다. 그래서 이종범은 호시노 감독을 만나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보도됐다. 최악의 경우 모종의 결심도 불사하겠다는 의중까지 내비쳤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나는 이같은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종범이 지금 제정신이야?"
일본에 금방 온 선수도 아닌데 감독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격앙돼 당장이라도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식으로 언성을 높이다니 정말 이종범이 프로선수인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한국 신문의 보도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만약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말 이종범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격이었다. 이종범이 일본의 조직생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결코 그런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범은 지난해 11월 주니치로부터 가을캠프 참가요청을 받자, 70세가 넘으신 아버지가 갑자기 아파서 집을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 후 양해를 얻었다고 한다. 그 때 호시노 감독은 캠프가 끝난 뒤 열심히 훈련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와서 1군제외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게 이종범측의 주장이었다.
나는 주니치를 출입하고 있는 스포츠신문 기자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주니치의 고위층과 아주 친한 일본인 A씨를 만나보았다. 만나서 단도직입적으로 주니치와 이종범 사이에 어떤 트러블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스포츠지의 기자들은 주니치와 이종범에 대해 특별한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한국말이 유창한 A씨는 전후사정을 듣자 한마디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종범은 아직도 한국야구 선수로군요."
아직도 이종범이 일본야구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종범이 선동열의 은퇴과정을 잘 음미해봐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A씨는 누구보다도 선동열의 은퇴과정 내막을 잘 아는 인물.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선동열의 은퇴를 예견했던 A씨다. 때문에 이종범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주니치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일본인 중의 한 사람이다. 이종범의 프로필과 한국에서의 성적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
"나도 그 신문을 봤습니다. 물론 구단측의 얘기도 들었고요. 결론은 아직도 이종범이 한국식의 야구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어요. 프로세계는 냉정합니다. 일단 구단 눈밖에 나면 찬스가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종범은 구단이 왜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걸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호시노 감독의 생각과 태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A씨의 말이었다. 그는 "만약 이종범이 한국신문에 보도된대로 불만을 가지고 호시노 감독에게 따지고 대든다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일본 스포츠지 기자들에게도 물어 보았다. 만약 이종범이 1군에서 제외되면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그들은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이종범이 2군으로 강등된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이종범의 편에 선 사람은 없었다. 평소 친한파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A씨도 이종범에 대해서만큼은 호시노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도대체 이종범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호시노 감독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극약처방을 내린다고 선언했을까? 역시 지난해 가을캠프 불참 때문에? 그러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