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5)

기사입력 2000년 01월 30일 14시 39분


"김일규라는 서기관은 없습니다."

아주국장 문형호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위자영을 보았다. 외교통상부의 아주국장실 안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왜 김일규라는 서기관을 찾습니까?"

"내가 전화를 받았어요."

입맛을 다신 위자영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내막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그 순간에 결정했다. 그러나 찾아와 확인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아니, 어떤 전화를 받았단 말씀입니까?"

"뭐, 양국간의 현안 문제였는데 중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름을 잘못들은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문형호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인삼차 잔을 들었다. 그는 중국대사를 기대하고 있는 인물이어서 중국측에 호의적이었다. 문형호와 중요하지도 않은 몇가지 문제를 의논하고나서 위자영이 대사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4시쯤이었다.

곧장 대사의 집무실로 들어간 위자영은 요경에게 내막을 보고했다.

"장난 전화였습니다. 아마 극동전자 측에서 한 전화같습니다."

"그들에게 내용을 말해 주었나?"

"김일규라는 서기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만 하고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괜히 시끄럽게 될 것 같아서요."

"그건 잘했어. 하지만."

"앞으로 그런 전화가 올 것에 대비해서 녹음시켜 놓았다가 한국정부에 항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쓴웃음을 지은 요경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도 위자영의 보고를 받고서 심기가 좋지 안았던 터라 허위 전화라는 것이 판명되자 조금 개운해진 표정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위자영이 막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대사관의 교환이었다.

"참사관님, 한국 외교부의 김일규라는 서기관이 통화를 하고 싶다는데요."

위자영이 눈을 치켜떴다가 서둘렀다.

"이봐, 그자와의 통화를 녹음하라구. 알았나?"

"예. 참사관님."

긴장한 목소리로 교환이 대답하자 그는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나, 참사관 위자영이요."

"난 어제 전화 드렸던 김일규올시다."

"서기관이라고 하셨던가?"

"그랬지요. 문서건은 결정하셨습니까?"

"내용을 다시한번 말씀해 주시겠소?"

"오늘 외교통상부에 다녀오셨지요? 그러니 김일규라는 서기관이 없다는 건 확인하셨겠군요."

"이봐, 당신 누구야?"

위자영이 목소리를 높이자 사내가 흥흥 웃었다.

"당신 딸 둘이 영국에서 호사스런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있는 사람이야. 한달에 3000파운드씩 쓰고 있던데 참사관 봉급으로 그 돈을 어떻게 대나?"

그러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위자영이 전화기를 내려다 보았다. 이 대화가 녹음되고 있는 것이다.

"이놈, 미친놈 아닌가?"

"지난달에는 당신 딸이 2만 5000 파운드짜리 차를 샀더구만. 차번호까지 말해줄까?"

그 순간에 위자영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데 벨이 울렸다. 이를 악문 그는 잠시 전화기를 내려다 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교환이었다.

"참사관님, 그자가 다시 전화를 해왔는데요."

교환의 목소리가 굳어 있는 것은 통화 내역을 들었다는 증거였다. 교환실에 있는 세명의 직원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위자영이 잇사이로 말했다.

"끊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