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105)
기사입력 2000년 01월 27일 14시 01분
야마모토 이등해좌가 외부 해치를 열자 잠수함 사령탑 위에 고여 있던 물이 사다리를 타고 주르륵 쏟아졌다. 깨끗하게 갈아입은 근무복이 흠뻑 젖었지만 야마모토는 아랑곳 않고 사다리를 타고 성큼 올라섰다.
야마모토의 뒤를 따라 올라오던 견시수 두 명이 사령탑 중간 양쪽에 붙은 또다른 해치 쪽으로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그곳은 사령탑에 달려 있는 커다란 잠항타로 이어진 통로이다. 견시수들은 이곳으로 나가 잠항타 위에 직접 서서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야마모토는 사령탑 맨 위, 항해함교에 올라서자마자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해상자위대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새하얀 색깔의 오라이언이 아라시오쪽으로 서서히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야！ 이 멍청한 놈들아！"
야마모토가 있는 힘껏 욕설을 퍼부었다. 얼핏 오라이언의 아래쪽으로 폭탄창이 열린 것 같았다. 그 안에는 73식 경어뢰와 폭뢰들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낮은 고도를 비행하는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터보프롭 엔진의 굉음이 높게 울려퍼지고, 아주 짧은 시간 머리 위로 거센 진동이 울려퍼졌다. 야마모토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오라이언은 아주 짧은 시간에 야마모토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간 다음 곧바로 상승비행에 들어갔다. 폭탄창에서 투하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오라이언도 놀란 모양이었다. 기체 아래쪽의 폭탄창이 바로 닫혔다. 우군 잠수함이란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오라이언은 다시 아라시오 쪽으로 선회하지 않았다. 기수를 아라시오와 반대쪽으로 유지한 채 고도를 계속 높여 급상승을 하고 있었다.
"바가야로！"
야마모토가 분기를 잔뜩 품은 채로 중얼거렸다. 오라이언은 꽁무니를 내뺀 채로 도망치듯 야마모토 이좌의 시선에서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독도 남서쪽 217㎞, 나대용함
"난리도 아니군요. 목표 27이 호되게 당했습니다. 목표 27이 엉클 조 프러시저에 너무 늦게 반응했습니다."
음탐장 김선욱 상사가 헤드폰을 잠시 벗었다. 일본 잠수함은 하마터면 동료 대잠기들에게 공격당할 뻔했던 것이다. 일본 대잠초계기의 위기에서 벗어난 안도감으로 김선욱이 작게 기지개를 켰다. 그때 최지훈이 김선욱에게 속삭였다.
"뭐? 엉클 조 프러시저를 모른다고?"
김선욱 상사가 기지개를 켜다 말고 최지훈 중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음탐장은 느긋했던 표정을 금세 지우고 최지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음탐장에게 질문하자마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최지훈이 이유도 모르고 어리벙벙하게 머리만 긁었다.
최지훈은 다시 묻고 싶어 입을 실룩거렸다. 한 대 맞더라도 궁금한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음탐장은 지금 알려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헤드폰을 쓰고 소나에 집중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부장 이찬복 중령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