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칼자루는 선수가 쥐고 있다
기사입력 2000년 01월 27일 14시 00분
프로야구선수는 특출한 기술을 지닌 전문 직업인이다. 어떤 분야든 전문 직종에 종사하며 단체에 소속된 직업인들치고 노조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고, 복수 노조까지 허용되는 것이 요즘의 실정이다. 300명이 넘는 고용인들(야구선수)이 있는 프로야구에도 진작부터 노조가 있었어야 함은, 복잡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난 1966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처음 선수협회를 발족할 당시에도 구단주들의 반대는 극심했다고 한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은 억누르고 짓밟아야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는 대세(大勢)가 있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3번째로 노조 결성의 움직임이 나오자 당장 70명이 넘는 선수들이 가입했고, 한때 그 숫자는 130명이 넘어 과반수에 이르기도 했다. 더 이상 힘으로 누르고 공갈로 위협한다고 큰 흐름의 물줄기를 막을 수는 없다. 당장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소나기를 피하려다 태풍을 만나기 십상이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칼자루는 구단주들과 협회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선수측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선수들이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둘러야 야구 경기가 펼쳐진다. 팬들이 관중석을 메우고 함성을 질러야 야구에 흥이 오른다. 선수들이 빠지고 관중들이 외면한다면 과연 프로야구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프로야구의 주체가 되는 선수들이 힘을 모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 선수협의회는 와해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혹시 당장 안되면 가까운 장래에 분명히 선수 노조가 결성될텐데 지금 뒷전으로 빠진 선수들은 그때가 되면 후배들과 후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자기는 절대 `비겁자'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이어서 물러나 있었다고 말하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박수를 받을까.
칼자루는 분명히 선수들이 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고 힘을 모으는 것도 역시 선수들의 몫일 뿐이다.
[LA＝민훈기 특파원 hkmin＠earthlink.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