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104)
기사입력 2000년 01월 26일 13시 19분
"악！ 수면에 폭발음입니다！"
"뭐야?"
수측장 카와이 일등해조가 귀를 감싸쥐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폭음이 이어지고 그것은 소나 헤드폰을 쓰지 않는 야마모토 함장까지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31항공군 놈들일 겁니다. 이 구역은 대잠초계기 작전구역이 아닌데…. 칙쇼！ 놈들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부함장 다케오 시니치(竹尾眞一) 삼등해좌가 해도판을 보며 소리쳤다. 대잠초계기와 잠수함의 작전구역이 중복되면 자칫 우군 잠수함을 공격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래서 잠수함끼리는 물론 잠수함과 초계기도 담당구역을 따로 지정한다.
그런데 31항공군은 이 해역에 나타나 일본 잠수함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케오 삼좌가 거듭 아라시오의 현재 위치를 체크했다. 그러나 아라시오가 머무르고 있는 해역은 잠수함 작전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폭뢰를 투하한 건가? 바가야로！ 우리들을 다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야마모토 이좌가 천장을 향해 주먹을 흔들어댔다. 보이지도 않는 하늘이지만 당장이라도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를 격추시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수면에 또 폭발음입니다！ 칙쇼！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측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보고했다. 또다시 폭음이 울려댔다. 폭발음은 정확하게 2초 간격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작게 들렸다.
처음에 긴장한 상황에서는 그것이 당연히 폭뢰라고 여겼지만 지금 들어보니 아닌 것 같았다. 폭뢰라고 생각하기에는 소리와 위력 모두 작았다. 야마모토 이좌는 소리의 크기로 보아 그것이 수류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망치로 아라시오함을 두들겨대는 것처럼 선체 이곳 저곳에서 깡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민감한 소나로 그 폭음을 계속 들어야 하는 수측장이 곤욕을 치렀다.
그것은 미 해군 전술교범(TACAID)에 규정된 잠수함 강제부상 절차였다. TNT폭약이나 수류탄을 2초 간격으로 도합 5회를 폭발시키는 방법인데 미국과 나토, 그리고 미국의 우방국 잠수함은 이 절차를 상호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런 망할！ 이미 부상을 했는데도 난리 법석이군. 도대체 어느 항공대 소속이야? 당장 징계위에 회부해버리겠어！"
야마모토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상자위대 항공군 소속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들은 잠수함 아라시오가 우군 잠수함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라시오가 부상하지 않으면 당장 어뢰라도 투하할 기세였던 것이다. 수류탄을 투하한 것은 마지막 경고였다.
"밸러스트 배수 완료！ 완전 부상했습니다. 함장！"
부함장 다케오 삼좌가 함장에게 소리 높여 보고했다. 부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초조했다.
"사령탑 해치 개방해！ 내가 직접 올라가겠다."
야마모토가 눈을 부라리며 사다리를 잡았다. 일장기라도 들고 올라가서 사령탑에 꽂아야 할 것만 같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