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2)

기사입력 2000년 01월 26일 12시 52분


방위산업연합회의 홍병권 과장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친절했다. 오성호를 상담실로 안내한 그가 웃음띤 얼굴로 물었다.

"대만으로 KPS형 무전기를 수출하는 문제로 오셨지요?"

"그렇습니다. 연합회에서 수출승인을 내주기 어렵다고 해서요."

오성호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방산연합회는 4부 2팀이 대만 오더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승인해주기가 어렵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방산연합회에 문의도 하지 않았던 터라 난데없는 전화를 받은 4부 2팀은 놀라 손을 뗐다.

2팀장은 위험한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성격이었다. 홍병권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을 들어 오성호의 잔에 따랐다.

"물론 규제품목은 아닙니다. 극동전자에서는 작년에 미국과 호주, 터키로도 수출했더군요."

"그렇습니다. 올해는 멕시코와 이집트에도 수출할 계획입니다."

"중국대사관에서 외교통상부로 협조 요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만의 군 장비로 사용될 것 같다고 해서요."

오성호의 시선을 받은 황병권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 아시다시피 중국은 대만으로 들어가는 군장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요."

"외교통상부 담당자가 누굽니까? 알려 주시면 그분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러자 황병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그가 오성호가 건네준 명함을 들여다 보았다.

"오대리님, 다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그곳에 찾아가봐도 별 신통한 방법이 없을 겁니다."

"아니 저는 대통령한테까지 찾아가 볼 작정입니다."

정색한 오성호가 황병권을 바라보았다.

"어떤 씨발놈이 법에도 없는 그런 압력을 넣는지를 알아야겠습니다. 중국 대사관 한마디에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무조건 기업체만 조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의외로 황병권이 벌쭉 웃었다.

"지난번에 왔던 분하고는 다르신데."

"어떤 병신새끼가 왔는지는 모릅니다만 우린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외교통상부 고위층의 지시였어요."

"장관입니까?"

"차관이요."

"고맙습니다"하면서 오성호가 일어날 것처럼 바로 앉았을 때 황병권이 말했다.

"운임은 조금 더 나가겠지만 일본을 경유해서 대만으로 수출하는 건 어떻습니까? 일본 대리인을 통하면 될 텐데."

"일본은 중국의 입김이 닿지 않는단 말씀이군요?"

그렇게까지 말해주는 황병권에게 오성호의 반감이 반넘어 풀렸다. 오성호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황병권을 보았다.

"그건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황과장님,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중국도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쪽도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겁니다. 큰 것을 갖기 위해서 작은 것을 양보하는 정책일 수도 있고."

입술을 내밀었던 오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주 전화를 주십시오. 나도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니까요."

황병권이 웃는 얼굴로 오성호의 손을 잡았다. 오성호가 회사로 돌아온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오성호의 보고를 받은 이대진이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좋아. 이제부터는 내가 맡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