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가공할 위력의 '배후 조종설'
기사입력 2000년 01월 25일 12시 04분
비장한 각오로 출범했던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가 현대 선수들의 대거 탈퇴와 삼성의 불참 선언으로 흔들리고 있다.
선수들간의 의견조율이 매끄럽지 않는 등 조직의 토대가 강력한 선수협을 일궈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만 일단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도하는 방해공작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KBO는 선수협이 불순한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배후조종설'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속내를 보면 한국 프로야구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기구가 내놓는 공식입장이라고 보기에는 사실관계가 너무나 빈약한 무책임한 선동문구 뿐이다. 무엇보다 본질과는 한참을 벗어나 있다.
KBO는 현 자문위원 중 한 사람이 여당 당적을 보유한 사실을 지적하며 "선수회는 박용오 KBO총재를 몰아내기위한 의도를 지니고 출범했다"고 `폭로'했다. `여당 당적보유＝KBO 총재 퇴출 음모'라는 비약은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묻고 싶다.
또 선수들을 향해서는 "특정 에이전트사(SM1)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선수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치고 던지고 달리는 것에만 청춘을 쏟아부은 선수들은 자신의 권리행사에 대한 도움을 도대체 어디서 받을수 있다는 말일까. 도대체 사전에 어떤 선수를 만났는지 여부가 선수협 창립 이념의 순수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비생산적인 `음모론' `배후조종설'로 선수협 창립 목적에 대한 논쟁은 뒷전이라는 사실이다. 프리에이전트제도는 필요한지, 대리인 제도와 다년계약의 합법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진지한 물음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선수들은 한국프로야구에 왜 `노비문서'라는 용어가 생겨났는지 설명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마치 정치판을 보는 것 같다.
[김우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