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 벤처 뮤지컬 '아보스' 제작자로 나서
기사입력 2000년 01월 24일 13시 22분
"일단 살려놓고 봐야한다는 생각에 제작을 맡기로 결심했습니다."
연극평론가인 국민대 이혜경교수가 공연취소 위기에 몰린 뮤지컬의 제작을 떠맡아 불황에 시달리는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비평이 본업인 `고상한' 평론가가 험난한 제작일선에 몸을 던진 것이다.
이교수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작품은 러시아 록뮤지컬 `아보스'. 당초 서울뮤지컬컴퍼니가 2월 예술의전당에 올릴 예정으로 준비해왔지만 누적된 공연적자로 중도에 두손을 들어버린 작품이다.
이달초 제작자로부터 `연습을 그만하라'는 통고를 받은 배우들은 울음을 터트렸고, 연출가 양혁철씨는 "포기할 수 없다"며 새 제작자를 물색해오겠다고 배우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요즘같은 불황에 선뜻 수억대가 되는 제작비를 투자할 후원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꿋꿋하게 연습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라고 격려해줬어요. 그러다 문득 `격려만 할게 아니라 차라리 내가 나서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더라구요."
지난해 8월 국민대 연영과에서 공연한 `안티고네' 연출을 양씨가 맡은 인연으로 예술대 실기실을 연습장소로 빌려줘 누구보다 배우들의 땀과 정열을 잘 알던 그였다.
제작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이교수는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일단 자신이 초기 제작비만 투자하기로 하고 배우들과 스태프의 출연료는 소액 투자 방식으로 공연후 받기로 합의를 봤다. `벤처 뮤지컬'이 탄생한 것이다.
"난생 처음 기업을 돌며 후원을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작비가 아직 턱없이 모자르거든요. 천사(엔젤 투자자)가 꼭 나타났으면 합니다."
희망을 찾는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를 그린 웅대한 서사시 `아보스'의 내용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초보 제작자' 이교수. 무대에 설 수 있게 돼 마냥 행복한 젊은 배우들 사이에 있는 그의 얼굴엔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아보스'는 2월12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대극장. (02)910-4387
[김형중 기자 hkim＠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