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28)
기사입력 2000년 01월 23일 14시 40분
눈을 뜬 이대진은 반쯤 걷혀진 커튼 사이로 창밖이 밝아져 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를 돌린 그는 반듯이 누워있는 김경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김경희도 깨어 있었던 것이다.
"6시가 조금 지났어."
낮은 목소리로 김경희가 말했다.
"한시간만 더 있다가 가."
"난 괜찮지만 거긴 문제 없을까?"
"공작을 수행했다고 하지 뭐."
김경희가 입술을 부풀리며 웃었다.
"반쯤 포섭했다고 할테니까."
시트 밖으로 김경희의 어깨와 젖가슴의 윗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이대진의 시선을 의식한 김경희가 시트를 끌어 올렸지만 이미 시트 밑의 두 알몸은 밀착된 상태였다.
팔을 뻗친 이대진이 김경희의 알몸을 당겨 안았다.
"이쪽에서도 서운해 할 사람이 많을텐데. 거기가 돌아간다면 말이야."
"그렇겠지. 당신을 통해서 나한테 역공작을 시도하는 중이었으니까."
이대진의 손길을 순순히 받아 들이면서 김경희가 웃었다.
"아마 내 가족관계까지 다 알아내었을 걸?"
김경희의 몸은 다시 뜨거워졌고 이제는 팔을 벌려 이대진의 목을 감아 안았다. 이대진을 올려다 보는 두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이대진은 서둘렀다. 그것은 김경희도 마찬가지여서 이대진이 상체를 들어 올리자 서두르듯 그의 몸을 받아들였다.
김경희의 부정적이며 적대적인 태도는 방어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부패한 한국 사회에 대한 경멸감도 스스로의 동경과 호기심을 짓누르려는 수단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한국 사회의 활력은 북한 체제하고는 전혀 비교할 수도 없을테니까. 눈을 감은 김경희는 탄성과 같은 신음소리를 뱉었다. 몸놀림이 더욱 거칠어졌다. 어젯밤에도 그랬지만 김경희는 행위 도중에 한번도 눈을 뜨지 않은 것이다.
"본래 이 사업은 한국정부를 철저히 이용하려는 해외사업단의 공작이었어."
둘의 몸이 떼어지고나서 한동안 가쁜 숨을 뱉던 김경희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공작이 진행되면서 예상치도 않았던 부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시찰단원 중에서 벌써 3명이 본국으로 송환되었지. 한국에 머물다보니까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일어난거야."
머리를 돌린 김경희가 이대진을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가 중국처럼 개방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야. 중국은 한국같은 동족정부가 아래에 없었거든."
"그럼 몇놈을 위해서 통일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이야긴가?"
"언젠가는 되겠지."
김경희가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뒤집혀질 수도 있고."
"한국에 남지 그래? 내 말은 귀순해 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야."
그러자 김경희가 빙긋 웃었다.
"날 우습게 보지말어. 이 쓰레기야. 난 조국을 배신할 생각은 없어."
"네 조국이란 것이 글쎄, 몇놈을 위한 체제가 아니냔 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야말로 처참한…."
"입닥쳐."
눈을 치켜뜬 김경희가 시트를 끌어당겨 젖가슴을 가리더니 상반신을 일으켰다.
"난 남아 있을거야. 그리고 지켜볼 거야."
김경희는 일어서더니 이곳저곳에 널려진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그녀의 알몸을 바라보면서 이대진은 담배를 빼내 물었다. 김경희가 한가지씩 옷을 걸칠 때 마다 가슴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미 아침 7시가 되어 있었다. 떠나기로 한 시간이었고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몰랐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