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 (1) 절름발이출발
기사입력 2000년 01월 23일 13시 40분
당초 선수대표들은 각구단이 21일 창립총회 참가인원을 맞추자고 뜻을 모았다. 방어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 저마다 소속구단의 입장까지 셈에 넣은 결과. 그러나 구단측의 조직적인 `선수 따돌리기'로 일부구단은 약속한 인원을 맞출수 없었고, 이에 몇구단이 방어태세로 돌았다. 총회장 근처에 일찌감치 대기중이었지만, 타구단의 참여상황을 지켜보며 입장하지 않았다.
시간을 지킨 이들은 오후 7시 10분께 입장한 두산의 12명뿐. 이후 속속 등장하는 선수들을 향해 장내의 팬들은 마냥 환호성이었지만, 대표들은 인원과 참여수위(누가 나왔나)를 키재느라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8개구단 굵직한 스타들이 대충 빠짐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구단간 참여수위는 뚜렷이 기울었고, 총회장 병풍뒤에선 대표간 말싸움이 격해졌다. 모구단 선수대표가 소속구단과 `밀약'을 맺었다고 알려졌고 즉각 `매수설'이 돌았다. `어느 팀이 해야 우리도 한다'는 모구단은 곁눈질이 더 바빴다.
"구단수는 채웠으니 총회를 강행하자"는 실리파의 주장은 "출발부터 우리 사이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파의 고집을 꺾을수 없었다. 맞화살표가 복잡해졌고 결국 싸움판. 오가는 고성속에 일부구단 퇴장. 한때 150명까지 차올랐던 열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75명의 위험한 숫자가 발기인이 됐다.
KBO `각개격파' 전략의 눈부신 성공. 적당히 얼르고 두들겨 선수들의 마음 한자락을 단단히 붙들었다. 선수의 이름으로 뭉쳤다면서 모두 각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까.
선수협이 출범하면 해체하겠다던 KBO는 선수 징계를 결정하는 등 활발한 활동중이다. 330명이 넘게 모았다던 선수협은 고작 75명의 사인을 받았다. 오로지 지켜진 약속은 KBO의 으름장도, 선수협의 선전포고도 아닌, 모구단과 선수대표간의 `밀약'뿐일까.
한데 뭉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임을 선수들은 비싸게 깨달은 셈이다.
[이승민 기자 cjminni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