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 라운지] 현주엽 골드뱅크 주전자 당번?
기사입력 2000년 01월 21일 15시 21분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조상님보다 무섭다는 `짬밥'의 위력을 잘 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짬밥'이며 군대식 문화다.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 국내 스포츠계의 분위기는 항상 군대식이었다. 어린시절부터 군대 내무반이나 다름없는 숙소생활을 해왔던 스포츠계는 위계질서에 철저한 군대식 문화로 유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기량과 관계없이 저학년 후배들은 늘 물주전자를 들고 다녀야 하고 세탁이나 청소 역시 후배들의 몫이다. 지금도 여자 프로농구팀들은 후배들이 코칭스태프와 선배들의 방석을 들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맨먼저 벤치를 찾는다.
남자팀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팀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되지 않은 쫄병들이 하늘같은 고참들의 물건을 챙겨야 했다.
그런데 80년대 초반 중앙대 농구팀에서 조용한 혁명이 일었다. 당시 고졸 최대어였던 허 재가 입학하면서 이런 위계질서가 깨졌고 주전멤버인 후배들이 선배가 갖다바치는 주전자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농구 잘하는 놈이 최고"라는, 당시로선 대변혁이 일어난 것.
얼마전 골드뱅크에서도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간판스타' 현주엽이 입이 한자나 튀어나온채 경기를 앞두고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이랬다. 조상현과 트레이드되는 바람에 졸지에 막내가 된 현주엽이 선수단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았고 가뜩이나 출전시간이 길어 심신이 지쳐있는데다 자존심이 센 그가 짜증을 부렸던 것.
"농구볼을 잡은 뒤로 요즘처럼 궂은일을 많이 한 적이 없다"는 현주엽을 위해 결국 골드뱅크는 지난해 12월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한 김동환을 다음주부터 모든 지방경기에 동행시키기로 했다.
[류성옥 기자 watchdog＠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