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영화 박하사탕의 기막힌 맛'
기사입력 2000년 01월 21일 13시 32분
아! 화∼ 한 박하사탕이여!
어제와 그제 영화 한편씩을 봤다. 극장으로 찾아가서 봤다.
우리영화 방화 국산영화 한국영화 모두 어휘 어감이 마땅치 않다. 우리영화로 하자. 하여간 우리 영화의 경우 그걸 찾아가서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잘난척 하자는게 아니다. 나의 경우 대개는 극장 앞에 섰을 때 볼만한 외국 영화를 다 봐서 더이상 볼만한 외국영화가 없을 때 아니면 외국영화의 상영시간이 잘 안맞을 때 그런때 주로 `그럼 아무 국산 영화나 볼까'하고 밑지면 본전식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 했다.
그러나 어제와 그제 연속으로 우리네 영화 `거짓말' `박하사탕'을 부지런히 찾아가서 봤다. 좀 특이한 경우였다.
`거짓말'은 빨리 안보면 포르노 운운하는 문제 때문에 합법적으로 상영취소가 될까봐 부랴부랴 찾아가 봤고 `박하사탕'은 이창동이라는 워낙좋은 감독의 이름과 미리부터 좋은 영화라는 소문과 무엇보다도 `박하사탕'이라는 제목이 웬지 괜히 좋아서 역시 부지런을 떨며 찾아가 봤다.
`거짓말'에 대해선 얘길 안 하겠다. 얘기가 이미 넘치지 않았는가. 또 할말도 별로 없다.
`박하사탕'에 관해서만 얘길 하겠다.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어이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정반대로 기차다는 얘기다. 죽여줬다는 의미다. 키아로스타미를 능가하는 우리네 영화가 이토록 일찍 나오다니 제대로된 고급문예 영화가 이토록 빨리 나올 수 있다니 정말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나는 평소에 우리나라에는 아무 내막없이 그저 벌거벗고 씩씩대는 영화, 아무 까닭도 없이 치고 받는 영화만 있는 줄 알았다.
문예영화는 아예 없어진 걸로 생각했었다. 이제까지 문예영화라고 스스로 딱지를 붙인 영화등은 내가 보기에 한결같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물건들이었다. 그냥 영화를 찍기위한 영화 즉 우리네의 실제 삶과는 늘 거리가 먼 내용의 얘기들이었다. 거창한 뻥튀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네의 문예영화에는 아예 기대를 안 했었다. 그게 맘 편한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바로 `박사하탕'이 그런 기우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 나는 한방 맞으면서도 너무 행복했다. 거기에 비하면 `초록물고기'는 연습영화였다.
영화의 배경 세트 출연자들이 입는 리얼한 의상 등등을 포함해서 우리네 영화의 가장 큰 결함인 미술이 우선 탁월했다. 과감하게 전출연자를 전원 알려지지 않은 얼굴로 채운 것도 압권이었다. 출발부터 자신만만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도 싸구려 박하사탕 한알로 영화 전편을 담담하게 꿰매었다는 것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요인이었다.
시퍼런 한국 매스컴에 몸담고 있는 후배녀석이 `박하사탕'을 봤다며 나한테 투덜댔다.
"형! 영화는 좋았는데 뭘 얘기하려는지 모르겠던데요?"
나는 응답해줄 가치조차 없어서 "얘이! 삼용이 같은놈!"하면서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우리 대 스포츠조선 독자 중에서도 엉덩이가 근질거리는 분이 여럿 계실 것 같아 미리 경고해 두는 바이다.
그런 투덜거림 "뭘 얘기하려는 지 모르겠던데요"는 마치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 거예요"하며 투덜거리는 거나 매일반이기 때문이다.
P.S ① 이감독님! 엔딩의 얼굴표정 클로즈업이 좀 오버로 느껴졌습니다.
② 한잔 살 기회를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