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98)
기사입력 2000년 01월 20일 15시 20분
대단층 운동으로 함몰된 동해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둘러싸인 내해(內海)지만 평균 수심이 1543m에 이른다. 가장 깊은 곳은 4049m 이르고, 대륙붕의 면적이 5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심해다.
그러나 울산에서 일본 오키 제도를 잇는 선 남쪽의 해안 지역은 다르다. 이곳에는 대륙과 연결된 광대한 대륙붕이 존재한다. 이 대륙붕은 서해와 동중국해의 대륙붕으로 이어진다. 이제 나대용함은 수심이 낮고 복잡한 대륙붕 수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함장님！ 현재 심도 20m입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고 부장 이찬복 중령이 보고했다. 독도해역에서 퇴각한 이후로 함장 김대헌 대령은 석고조상처럼 무표정한 자세로 계속 그렇게 서 있었다.
"좋아. 잠망경 올려！"
이찬복 중령이 잠망경 작동버튼을 누르자 SERO 14형 탐색잠망경이 밀려 올라갔다. 사령부와 통신하기 위해서는 통신용 부이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통신용 마스트만 물 밖으로 내놓으면 된다. 그러나 함장 김대헌 대령은 주변의 상황을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기상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초속 10m가 약간 넘는 바람이 불고 있을 뿐인데 수면 위로 이는 파랑은 점점 거세어졌다. 크기가 작은 나대용함이 파랑을 측면으로 받으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통신문이 입전됐습니다！"
통신장 유영산 중위가 통신이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 함장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나대용함은 다시 물 속으로 숨을 차례였다. 잠망경이 다시 내려가고 이찬복 중령은 잠망경으로 촬영한 영상을 재생시키기 위해 비디오 레코더를 조작했다.
"수면 상황은 예상 외로 조용합니다. 이 해역은 원래 대게잡이 어선들이 많은 곳인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이찬복 중령이 갸우뚱거리며 보고했다. 화면이 몇 차례 반복 재생되고 이찬복이 재차 확인했으나 바다 위에는 어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찬복이 이상한 일이라고 갸우뚱거리는 동안 ESM 탐색결과가 나왔다.
바다 위가 조용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중에서는 여러 복잡한 전파신호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대잠초계기 오라이언에서 발사한 레이더 전파가 여러 군데에서 감지되었다.
"방위로 보아 우군 오라이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상자위대의 오라이언입니다."
이찬복 중령이 보고를 마치고 다시 ESM 콘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9.5 기가헤르츠 대역의 전파를 사용하는 오라이언의 대수상레이더는 다른 전파와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 외로 많은 숫자에 다시 놀랐다.
자칫 나대용함의 잠망경 마스트가 일본 대잠초계기에 발견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찬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함장 김대헌 대령은 여전히 무표정한 그대로였다. 그러나통신문을 읽어 내려가는 함장의 미간이 잔뜩 좁아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