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덕성 상실, 황금만능주의에 원조교제 급증
기사입력 2000년 01월 20일 14시 48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새천년이 `원조교제'로 시작됐다.
20세기의 마지막을 비아그라에 관한 논쟁으로 떠들썩했던 우리 사회가 새천년의 벽두부터 `미성년 매매춘' `원조교제'로 시끄럽다.
김강자 신임 종암경찰서장이 최근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언했고 수십년간 암묵적으로 공창 지역처럼 인정을 받아온 속칭 `미아리 텍사스'가 곧 철거될 예정이다.
나이어린 소녀들과 원조교제를 한 의사와 초등학교 교사들이 구속되는가 하면 미성년자에게 윤락행위를 시킨 업주를 다른 윤락업소 업주가 신고하는 `우스운' 사건도 생겼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性)과 관련해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탤런트 서갑숙씨의 성체험 고백서 파문, 영화 `거짓말'을 둘러싼 선정성 논란 등을 거치며 성을 공론화하자는 거대한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또 한편으로는 원조교제라는 이름의 10대 매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성을 공개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움직임과 다시 음지로 떠미는 모순된 행동이 공존하고 있다.
10대 매매춘이 최근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10대 중반의 가출소녀가 티켓다방에서 윤락행위를 하다 경찰에 적발돼 청소년 보호시설에 입소되거나, 여중고생이 환락가에서 몸을 팔다 심야단속에 걸려 매스컴에 오르내린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원조교제가 심각한 것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10대 매매춘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원조교제의 당사자인 여성은 매춘행위에서처럼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본인이 얼마든지 손님을 고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마음에 드는 `아저씨'에게는 기꺼이 몸을 팔고 설혹 계약관계가 체결돼 성행위를 전제로 만났더라도 싫으면 얼마든지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
성행위를 거부한다고 해서 폭행을 당할 염려도 없다.
원조교제의 상대 남성들 대부분이 대학생에서 60대 퇴직 교장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부류이기 때문에 소녀들은 뜨내기 술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윤락가 여성보다 `안전한' 상태에서 돈을 벌 수 있다.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단속에 걸린 소녀들 중에는 "돈이 필요해서"라는 이유 외에도 "내가 즐기기 위해서"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서" 등 그간의 우리 정서와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소녀가 080전화서비스를 이용해 원조교제에 뛰어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천의 모여고생이 같은 학년 500명중 90%가 직@간접적으로 원조교제를 경험했다는 발언을 해 사회를 충격 속에 빠뜨리기도 했다.
옆자리 친구가 가진 `베르사체' 청바지가 부러워서, 친구 생일선물로 20만원짜리 옷을 사주기 위해 기꺼이 낯선 아저씨와 잠자리를 갖는 모습에서 `생활비가 없어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등 과거와 같은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서 시작돼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원조교제.
여러 학생이 한 학생을 소외시키는 일본의 `이지메'가 우리나라로 건너와 더욱 심각한 `왕따' 현상을 낳았듯 일본의 원조교제는 우리 사회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성적'(成績)이라는 유일한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해온 우리 교육현실이 청소년들을 `성적'(性的)으로 둔감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