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찬호] '한국문화 보여주자'…주심에 인사
기사입력 2000년 01월 18일 13시 52분
94년 2월 중순, 처음 타본 다저스 전세기는 5시간을 넘게 날아 베로 비치의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안병환 감독도 동행했는데 공항에 내리니 오말리 구단주가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오말리씨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다른 선수들은 버스 등으로 이동을 했지만 자신의 차에 타라고 말했다.
직접 운전을 하면서 다저 타운의 구석 구석을 설명하며 보여주는 그 분을 보면서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2주간을 그곳에서 지내며 찬호의 첫 스프링 트레이닝 훈련을 지켜보았다.
영어를 못해 통역을 두고 있었지만 찬호는 잘 적응했다.
한번은 클럽하우스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동료들이 미국 노래를 해보라고 하자 찬호는 `해피 버스데이'를 불러 동료들을 웃겼고, 이 방안에서 누구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으냐고 묻자 `토미 라소다'라고 답해 폭소가 터지기도 했었다.
찬호는 당시 겁도 없이 잘 던졌다.
시범 경기가 진행될수록 잘 던졌고 방어율도 가장 좋아 스프링 트레이닝이 끝날 때쯤에는 `혹시?'하는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부딪혀 보니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 곧바로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호가 얼마나 주목을 받았는지 당시 찬호의 투구 동작중에 아주 잠깐이지만 멈추는 동작을 하며 던지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심판들이 회의까지 했고, 결국 자연스럽지 않으면 보크라는 결론이 나와 찬호는 투구 동작을 바꿔야했다.
당시 나와 찬호는 뭔가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경기를 시작하면서 주심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심판에게 공을 받을 때도 인사를 했지만 그만두고 경기 시작때만 인사를 했고, 지금까지 그대로 행하고 있다.
스프링 트레이닝이 끝나고 LA로 돌아왔는데 라소다 감독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찬호가 곧바로 메이저리그로 가는 것을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메이저리그 사상 17번째인가 그랬으니 너무 기뻤지만 한편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기쁨도 한 순간, 결국 20일을 못 버티고 찬호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는 통고를 받았다.
나는 기회도 않주고,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마이너리그행이라니 분통이 터져서 오말리 구단주에게 전화를 해서 이럴거면 무엇하러 메이저리그로 데려왔느냐고 화를 냈다.
오말리 구단주는 "이것이 찬호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며 항상 곁에서 도울테니 아무런 걱정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 또한 찬호를 설득하고 안심시켜야했다.
나는 찬호에게 "네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실력은 있지만 아직 경기 운영을 배우고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니 잘 하면 곧 다시 부를 것"이라고 찬호를 위로했다.
물론 찬호가 금방 다시 메이저로 올라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1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찬호와 함께 다저스의 더블A 미션스팀이 있는 샌안토니오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