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 성인식 문화 - 성인식과 고갸루

기사입력 2000년 01월 18일 13시 52분


일본인들의 특징은 변화에 민감하고 적응력이 남다르게 빠르다는 점이다.

고갸루에 있어서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맨처음에는 지극히 일부라고 단정하고 도외시한 채 무시만 해왔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갸루들의 모습은 거리 뿐만 아니라 전철안에서도 흔히 마주쳤고, 심지어는 동네거리, 집안에서도 부딪치는 얼굴이었다. 그저 타인의 일이거니 했는데 어느새 내 이웃, 아니 내 가족이 고갸루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갸루의 모습이 하나의 유행으로 번진 것이었다.

그러자 가장 당혹해 한 것은 부모들. 말릴 시간조차 없이 유행으로 번져버려 딸이 고갸루가 되어가는 모습을 눈뜨고 멍하니 바라 보아야만 했다.

"맨처음에는 가방검사를 하기도 했어요. 그 안에는 방과후 갈아 입을 옷 두 세벌과 화장품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야단도 쳐보고 뺏어도 봤지만 며칠후면 또 가지고 나가요. 학교갈 때 코인 라커 속에 넣었다가 오후에 찾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데요. 지금은 아예 딸과 타협을 했어요. 1년만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 다음부터는 착실히 대학입시에 전념하겠다고요. 전 딸의 약속을 믿어요."

여고 1년생 딸을 둔 후쿠이 부인의 말이다. 나중에 그녀는 딸과 함께 똑같이 화장을 하고 거리에 나가보기도 했단다. 딸과 같이 돌아다니며 딸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해보았다는 것. 시내에 나가 거리에 주저앉아서 딸과 수다를 떨어보기도 하고 게임숍에 가 춤도 춰보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오후 내내 쏘다녔다고 한다. 그런 모녀를 보고 남편은 "이제 같이 미쳐가는군"이라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몇 번 고갸루의 경험을 한 후쿠이부인의 결론은 `기분이 상상외로 상쾌했다'는 것. 처음에는 딸을 감시할 겸 골탕먹일 셈으로 따라 나선 것이었는데 의외로 말끔하게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딸에게 윽박지르고 때리고 협박했던 것이 슬그머니 무안해질 정도로 이해가 되더라고 했다. 정해진 카테고리 안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모범생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심리적 부담감으로부터 학생들이 완벽하게 해방되는 지름길이 바로 고갸루였다고 한다. 그래서 딸과 협상 끝에 1년만에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는 것.

이렇듯 고갸루의 모습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웃사촌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자연 경시풍조로부터 벗어나 이들을 조금씩 이해하려는 기성세대가 늘어났다. 또한 백화점들은 몇 년간 계속해서 고갸루붐이 일자 아예 긍정적으로 방향을 전환시켜,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짜기 시작했다. 고갸루야말로 백화점이 가장 좋아하는 소비층이었던 것이다.

한 대형 백화점에서는 고갸루마마를 위한 특별 서비스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다. 쇼핑을 할 동안 아이를 대신 봐주는 것이다. 10대에 아이엄마가 된 고갸루 마마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서비스일 수 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고갸루에 대한 인식변화가 이처럼 긍정적으로 흐르다보니 때아닌 분야에서 역류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보통 일반인들은 연예인들의 흉내를 잘 낸다. 특히 10대들은 더욱 그러하다. 메이컵이나 패션, 자질구레한 우스개소리까지 따라한다. 그런데 고갸루에 대한 것만큼은 정반대였다. 개그맨이나 탤런트들이 고갸루들이 잘 모이는 시부야나 하라주쿠에 나가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대로 방송에서 흉내를 내는 것이다.

버라이어티 쇼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 연예인들을 모두 고갸루의 패션으로 분장시켜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늦은 밤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야한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거리에 나가 고갸루를 스카웃하여 출연시키는 방송사도 있다.

이렇듯 10대들의 퇴폐행위라고 마냥 경시돼왔던 고갸루 현상이 이제는 일본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당당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극히 일부에서 저질러지는 원조교제나 문란한 성생활, 임신중절, 마약 등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그러들줄 모르는 고갸루 문화. 보기만 해도 어지럼증이 나는 굽높은 구두를 신고, 담배를 꼬나 문채 걸어가는 10대 고갸루의 모습을 나는 매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