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프로답지 않은 백지연봉 위임
기사입력 2000년 01월 17일 14시 27분
한다 하는 프로축구 스타들 사이에 연봉 백지위임이 유행이다.
포항의 `라이언킹' 이동국에 이어 울산 현대의 고참 미드필더 정정수가 계약서와 펜을 구단에 맡겼고, 99프로축구 MVP 안정환까지 "알아서 해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연봉테이블을 떠났다.
그때마다 따라나오는 얘기는 애국가 후렴처럼 똑같다. `구단은 돈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를 높이 사 적절한 보상을 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이만큼 흐뭇한 장면도 흔치 않다. 선수는 돈에 신경 안쓰고 운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연봉을 백지위임하고, 이에 감동한 구단은 당초 책정액보다 주머니를 좀 더 부풀려주고.
하지만 보통 선수도 아니고 걸출한 스타급들이 줄줄이 연봉을 백지위임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어쩐지 맥이 빠진다. "주는대로 받겠다"는건 간판 스트라이커나 후보나 똑같은 월급봉투를 챙기는 아마축구팀 얘기지 서슬 퍼런 프로세계에서 할 말이 아니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는 구단이 특정선수를 잡기 위해 백지수표를 제시하는 일은 종종 있어도 선수가 백지위임을 했단 얘기는 듣기 힘들다.
그라운드에서 공만 잘 차면 되는거 아니냐고 한다면 착각이다. 자신의 땀방울을 팔아 정당한 값을 받아내는게 진정한 프로란걸 안다면 연봉을 그렇게 쉽게 내맡길 수 있을까. 또 경기가 없는 겨울에 스타의 연봉협상 과정을 지켜보는데서 낙을 찾는 팬들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물샐틈 없는 연봉협상 자료를 준비해 선수 대신 협상 테이블에 앉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최첨단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 세상.
백지위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프로선수이길 포기하는 처사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박진형 기자 jinp＠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