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1년 계약이 찬호에 훨씬 유리'
기사입력 2000년 01월 17일 11시 57분
그러나 `슈퍼 에이전트'라는 별명이 붙은 스콧 보라스(48)의 사무실은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의 거리와는 반대로 점점 밝아지기만 한다.
최근 `코리안 특급' 박찬호(27．LA다저스)의 공동 에이전트로 등록한 보라스를 LA 남쪽 오렌지 카운티의 어바인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찬호에게 오래 관심을 둔 것으로 아는데 처음 본 것은.
▲지난 91년 롱비치에서 열린 청소년 굿윌 게임에서 처음 봤다. 한국팀에는 좋은 투수들이 많았는데 박찬호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인상적이었나.
▲내가 갔던 날은 찬호가 불펜 피칭만 해 경기는 못봤다. 잠깐 동안의 불펜 피칭이었지만 부드러운 팔이나 단단한 하체, 그리고 아주 좋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시속 90마일대의 직구는 특별한 투수임을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 팀 관계자에게 명함을 건네 줬었다.
－찬호가 미국에 온 후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표명했는데.
▲그렇다. 더블A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엘파소, 샌안토니오 등을 찾아다니며 찬호와 인사를 하고 식사도 하고 그랬다. 재능과 성실성, 그리고 적극적인 성격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 찬호는 그것들을 모두 갖춘 선수라도 생각했다. 다저스타디움을 찾을때마다 어김없이 러닝이나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찬호를 보면서 반드시 성공할 선수라고 믿었다.
－공동 에이전트를 하게된 계기는.
▲찬호의 에이전트가 되고 싶은 생각은 계속 있었지만 친형제처럼 지내는 스티브(박찬호의 에이전트)와의 관계를 존중하기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스티브가 제의를 해와서 기쁘게 받아들였다. 앞으로 함께 일하면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스티브는 광고 등 비지니스쪽을 계속 담당하며, 미국내 광고 시장 등도 함께 개척할 것이다.
－박찬호가 지난 시즌 고전한 이유를 뭐라고 보는가.
▲시즌 초반 찬호는 첫 등판부터 10승 이상을 염두에 뒀다. 몹시 서둘렀고, 초반에 부진하다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렸다. 후반기 7연승을 거두었고, 마지막 게임 막강 휴스턴전의 역투가 찬호의 진면목이다. 경험이 쌓이고 장확한 정보를 제공받으면 앞으로는 그런 슬럼프는 없을 것이다.
－어떤 정보를 제공한다는 말인가.
▲마운드에 올라서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공만 던져야 한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팀 스포츠 심리학자인 하비 도프맨과 찬호, 그리고 나와 셋이 만나 정신적인 준비를 할 것이다. 마운드에서 여유를 갖고 강력한 공을 뿌릴 수 있는 정신적인 준비를 하고 시즌에 임하게 될 것이다.
－도프맨은 누구인가.
▲최근 `피칭의 정신적인 게임'이라는 책을 펴내기도한 도프맨은 오클랜드 에이스와 플로리다 말린스가 우승했을 때 팀의 상담역을 했던 유명한 심리학자다. 3년전부터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경기에서의 집중력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투수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가장 궁금한 것은 박찬호의 재계약이다. 1년 계약이 확실한가.
▲현재로서는 1년 계약을 맺는 것이 찬호에게 훨씬 유리하다. 물론 올시즌에는 거액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2년후에 프리에이전트가 될 것임을 감안하면 어설픈 장기 계약은 손해다. 구단에서도 1년 계약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 이야기를 좀 해달라. 원래 에이전트가 꿈은 아니었다는데.
▲70년대 야구 선수의 꿈을 쫓았으나 3번이나 무릎 수술을 하면서 좌절된 후 학업을 계속해 의학박사 학위와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1981년 시카고에서 의료전문 변호사로 일하던중 마이너리그 시절 동료이던 빌 코우델을 우연히 만났는데 내게 에이전트를 부탁했다. 정말 재능이 뛰어난 투수였는데 사생활이 아주 나빴다. 성실하게 야구에 전념한다는 조건으로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는데 그 친구가 약속대로 야구에만 몰두, 시카고 커브스의 마무리로 자리잡으며 3년 연속 28세이브, 30세이브, 36세이브를 기록했다. 84년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돈 많이 받는 투수가 되면서 나와 코우델의 기사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실리고 에이전트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드래프트 선수들의 계약이 보라스의 등장으로 완전히 양상이 바뀌었는데.
▲1965년 드래프트 1번으로 뽑힌 릭 먼데이가 10만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를 받았는데 1982년 1번이던 션 던스턴의 보너스도 10만달러였다. 각 구단은 신인들이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난 옳지 않다고 믿었다. 여러 방법으로 구단들과 싸웠고, 요즘은 최고 1000만달러까지 루키 계약금이 뛰었다.
－어린 선수들의 재능을 파악하는데 천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비법은.
▲우선 내가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나는 타고난 야구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든 투쟁을 해야했다. 그래서 선수들의 입장과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우리 회사는 미 전역에 8명의 스카우트를 두고 있다. 아마추어들과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끊임없이 관찰해 좋은 선수가 있다는 소식이 있으면 직접 날아가 지켜본다. 그렉 매덕스와 계약한 것은 그가 18살때였다. 찬호를 18살때 보게된 것도 행운이었다.
－소속 선수들의 성공도 조기에 뛰어난 선수를 잡은 결과인가.
▲어린 나이에 계약을 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매년 미국에서만 150만명의 선수가 드래프트 자격이 있으나 프로팀에 뽑히는 선수는 700명 정도다. 그중에 6년 이상 메이저리그 생활을 하는 선수는 단 2%에 불과하다. 그리고 메이저리거들의 평균 수명은 3년 정도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평균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 좋은 성격과 재능의 선수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선수를 어떻게 키우느냐도 아주 중요하다.
－성격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아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야구에 전념할 수 있는 성격과 태도는 아주 중요하다. 야구를 사랑하고 승리를 위해 변신할 수 있는 선수라야 성공한다.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활발한데.
▲한국인들은 근면하고 아주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한국 식당만 가봐도 종업원들이 정말 부지런하다는 것을 보게된다. 메이저리그에는 투수가 계속 부족하고 한국에는 좋은 투수 재목들이 많아 앞으로 계속 좋은 선수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퇴근 시간 아닌가.
▲11월부터는 퇴근이라는 단어는 없다. 오늘도 새벽 1시에 미팅이 있다. 소속 선수가 메이저리거 50여명에 마이너리거 35명이니 연봉조정신청과 재계약 등을 준비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어바인 사무실에만 22명에, 애틀랜타까지 하면 40명이 넘지만 요즘은 쉴 틈이 전혀 없다.
－시즌중에도 계속 바쁠텐데 휴가도 없나.
▲야구장 가는 것이 휴가아닌가.(웃음) 오프 시즌 막판에 1주일 정도 휴가를 내서 가족들과 보낼 예정이다.
[어바인(미국 캘리포니아주)＝민훈기 특파원hkmin＠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