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천년을 내다보는 런던의 관광행사
기사입력 2000년 01월 16일 14시 53분
1999년 12월31일 윤호진은 영국 런던에 있었다！ 왜? 너무나 보고 싶었던 런던의 밀레니엄 행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절친한 후배가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었고, 그간 일한답시고 두아들과 제대로 한번 놀아주지도 못하던 애비가 가족과 함께 모처럼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약 2주간 런던에서 머물렀고, 이틀간 파리에 잠깐 들렀다.
31일 저녁 7시쯤 나는 가족들과 함께 템즈강으로 나갔다. 길에 몰려드는 인파를 보고는 처음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공포감으로 변했다. 300만명의 인파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서로를 잃어버릴까 봐서 머플러로 이어 감고는 떼로 몰려다녔다. 길거리의 전광판이나 방송에서는 쉬지않고 한가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템즈강쪽으로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물에 떨어집니다'. 나중에는 강주변을 경찰들이 에워 쌌다.
모든 밀레니엄 기념 구조물들의 특징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라는 것이었다. 버킹검궁 앞에는 대형 놀이기구들이 설치돼 있었는데 궁에서 그것을 허가해 준 것이 역사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밀레니엄 행사의 꽃은 템즈강 하구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새로 지은 밀레니엄 돔이었다. 이 돔은 10만명 수용이 가능한 초대형 행사장이다. 여왕은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왕궁(템즈강 빅벤 부근)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고, 총리는 시민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행사장으로 움직였다.
돔 행사의 의미와 그 에너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모이는 방법에서부터 아이디어를 낸 이들의 준비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왕이 배를 타고 돔으로 움직이는 동안은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밤 11시부터 엄청난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세계최고 가수들의 축하공연으로 막이 올랐다.
12시가 되자 템즈강에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강 상류에서 연속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폭죽은 약 20분간 강하구까지 쉬지않고 터져댔다. 이 폭죽의 의미는 대영제국의 시대를 다시 열어보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한발당 3000만∼4000만원이나 한다는 그 폭죽을 강 전역에 뿌리고 있는 그들의 대담함에 우리 가족은 넋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그 쏟아지는 폭죽 사이로 천년만에 처음으로 하늘에서 비틀거리는 놀란 비둘기들을 보았다. 트라팔가 공원 주변의 수천마리 비둘기들은 폭죽이 터지는 20분 동안 런던 하늘을 꽉 메우고 인간들의 축제에 놀라 푸드덕거리며 함께 잠을 설치고 있었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TV뉴스에서 도쿄의 타종에 이어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씁쓸했다. 문화의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섭도록 놀라웠던 것은 모든 기념물과 행사들이 끝나고 나면 철거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천년을 내다본 대비였다는 점이다. 나처럼 모여든 관광객들을 비롯해 앞으로 천년간을 드나들 세계의 관광객들을 위해 그들은 앞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