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횡설수설 '대통령한테 칭찬 받아봤수?'
기사입력 2000년 01월 14일 14시 11분
두가지 질문을 하겠다.
첫째 당신은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공식석상에서 칭찬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그런 일을 상상이라도 해 보았는가. 둘째도 비슷한 내용의 질문이다.
만일 당신이 공식석상에서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개인적인 칭찬을 들었을 때 당신의 느낌이 어떠했겠는가. 그것도 당신이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서 그랬을 때 당신은 어떻게 처신했겠는가 말이다.
나의 새천년 시작은 쾌청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일종의 무차별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서대문 불광동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여러 채의 멋진 벽돌건물이 있는데 거기가 한국여성개발원이라는 곳이다. 머리털 나고 첨 가봤다. 한국 여성들이 이런 멋진 곳에서 개발(？)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찬바람 뚫고 거길 간 이유는 한국여성 단체의 새해맞이 인사모임에 축가를 맡은 때문이었다.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는 특별 모임이 이라는 것이 사실상의 포인트다.
그런 장소에는 귀마개를 끼고 007 가방을 든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사방을 지키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 갈 수가 없다. 나는 미리 받은 표찰이 있어서 무사통과로 입장했다. 여성 국회의원을 비롯, 한국의 알려진 여성들의 얼굴이 다 보였다. 옷로비에 관여한 여자들만 안 보였다.
남자는 청일점 나 하나였다. `아！ 타고난 여복.'
대통령 부부가 입장하자 준비된 식순에 의거, 예식이 착착 진행돼 갔다. 이젠 우리도 많이 세련되었다. 결코 지리하게 식이 진행되지 않았다. 여성 대표의 인사말이 있고 이어서 조영남의 축가가 있고 그런 다음 오늘의 주빈 대통령의 축사 말씀만 들으면 전부 끝나는 거다.
내순 서 바로 직전이었다. 이때 사회자의 돌출 발언이 재미있었다.
"여러분 오늘이 대통령의 생신입니다."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가 노래 부를 차례였다. 그곳에 미리 준비된 그랜드 피아노에 앉으며 나도 돌출 발언을 했다.
통상 대통령이 계신 자리에선 일절 돌출 발언이 용납되지 않는 법이다.
"여러분, 생일축하 노래를 우리 다함께 부릅시다. 시작！"
생일 축하 노래를 마친 후 나는 준비했던 대로 김동진 작곡의 가곡 `목련화'를 열심히 불렀다. 박수 짝짝짝.
대통령께서 단상으로 나섰다. 대통령의 말씀이 시작되자 온통 시선이 내쪽으로 쏠렸다.
"생일 얘기는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뜻밖에 조영남씨의 생일축하 노래를 서비스받아 너무 기쁩니다. 그럼 저도 조영남씨의 서비스에 보답하는 의미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전주곡인가. 대통령이 느닷없이 내 얘기를 꺼내자 사람들은 나를 단상 쪽으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고, 나는 몸둘 바를 몰라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요상한 몸싸움까지 생겼다.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오래 전 얘깁니다. 사람들이 하도 조영남씨더러 못생겼다, 못생겼다 해서 제가 자세히 보았는데 저 사람 얼굴이 절대로 못생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소리냐, 조영남은 잘생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다 기준을 두고 저 사람을 못생겼다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저 사람의 노래하는 모습은 다 봤습니다. 그런데 어디가 못생겼습니까？ 보면 볼수록 매력있게 보이는 사람이 진짜 잘생긴 사람 아니겠습니까！"
굉장히 긴 변론이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당신이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만좌중 앞에서 일방적인 칭찬을 들었을 때 당신의 느낌이 어떠했겠는가.
내 경우는 이러했다. 이건 체험에 입각한 최선의 답변이다. 나의 두뇌는 복잡하게 찌그러져 갔고 순간적으로 망가진 뇌작동에 의거한 나의 육신과 사지는 온통 뒤틀려만 갔다.
정식으로 고문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일방적인 칭찬은 바로 고문 비슷한 거라고 느꼈다. 나는 말 그대로 임금님한테 칭찬 받은 광대였다. 그렇게 잘 생겨 보였으면 진작 환경부 장관이라도 하나 주시지 쯧쯧.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