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93)
기사입력 2000년 01월 13일 14시 34분
독도, 동도
"한국 놈들은 다 죽은 것 같은데 이런 헛수고를 하게 하다니！"
공정단원들이 철벅거리는 동굴을 따라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지만 이상한 것은 없었다. 미야자키 요시히코 육사장이 소총에 매달린 플래시로 이쪽저쪽 비추며 동굴을 탐사하듯이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다나카 이등육사가 두려운 얼굴로 미야자키를 뒤따랐다.
독도의 자연동굴은 방어측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앞뒤로 뚫려있는 데다가 가운데 부분이 내려앉아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삼면에서 포위당할 게 뻔한데, 한국 경찰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곳을 최후 거점으로 삼을 리가 없었다.
"이봐！ 고바야시 자네가 선두를 맡아."
긴장이 풀린 미야자키가 짜증을 내며 말하자 다른 자위관이 앞서 나갔다. 미야자키는 잠시 멈춰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동굴 속에 울려퍼졌다. 다나카는 이런 상황에서도 짐짓 여유를 부리는 미야자키 육사장이 부러웠다.
-땅！ 따당！
엄청나게 큰 소리였다. 동굴 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커다란 총소리 직후, 미야자키가 물 위에 쓰러지며 텀벙거리는 작은 소리를 냈다. 그 다음은 선두를 맡은 고바야시 일등육사였다. 두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총구에서 번득이는 불빛이 동굴 한쪽 구석 틈바구니에서 비치고 있었다.
-투타탕！ 따다다다당！
자위관들의 응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나카는 당장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소총 쏘는 소리와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빛과 연기가 계속 피어났다. 비명과 함께 뭐라뭐라 급하게 고함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피하든지 쏘든지 해, 이 멍청아！"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동굴 속에서 그보다 큰 외침 소리가 들려와 다나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동굴 북쪽 입구에서 진입하기로 한 소대장이 어느새 1개 분대를 이끌고 나타나 한국 경찰의 배후를 공격하고 있었다. 뒤에서 나타난 공정단원들 덕분에 한국 경찰은 쉽게 제압되었다.
"저런 얼빠진 놈이 대일본제국군의 후예라니！"
야마카와 히도시 이등육위가 투덜거리며 한국 경찰의 시체를 살폈다.
10여 명쯤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적은 단 두 명 뿐이었다. 2분대장이 화들짝 놀라 물러서며 한국 경찰에게 총구를 겨눴다.
"소대장！ 한 명이 살아있습니다！"
"그래? 잘됐군. 이봐！ 다나카 이등육사！"
소대장이 부르자 다나카가 허겁지겁 뛰어갔다. 다나카의 눈앞에는 총탄 수십 발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중상을 입은 한국 경찰 한 명이 바닥에 엎드린 채 피를 줄줄 흘리면서 조금씩 꿈틀댔다. 움츠린 것을 보니 아마도 배를 맞은 것 같았다.
"자네가 이놈을 확인사살해！ 적을 쏜 자야말로 진정한 군인인 거야."
"부상자를 어떻게…."
다나카는 끔찍했다. 소대장이 눈알을 부라렸지만 그는 다 죽어가는 부상자를 쏠 수가 없었다. 다나카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한국 경찰의 움직임이 약간 이상하다고 느꼈다.
"자네같은 겁쟁이 때문에…. 헉！ 뭐야?"
"소대장！"
공정단원들이 놀랐을 때는 중상을 입은 한국 경찰이 이미 소대장의 허리를 뒤에서 꽉 조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국 경찰의 손아귀에는 수류탄이 들려 있었다. 놀란 자위관들이 발버둥치는 소대장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다나카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소대장을 붙잡은 한국 경찰은 머리에서 흘린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 마치 아귀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두운 동굴 안에서도 두 눈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글거리는 사람 눈은 처음이라 다나카는 질리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눈빛보다 더 밝은 빛이 동굴 속을 가득 채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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