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20)
기사입력 2000년 01월 13일 14시 30분
이대진과 조재철이 방을 나가자 백경일이 말했다.
"저놈이 어떤 꿍꿍이 속이 있는 겁니다. 부장 타이틀보다 팀장으로 있으면서 얻는 실익이 더 크기 때문일 것 같아요."
잠자코 앉아있는 백주현에게 그가 상반신을 굽혔다.
"아버님, 어떻게 하지요? 제 생각에는."
"네 생각을 말해봐라."
"그냥 이대진을 부장으로 진급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백주현의 시선을 받은 그가 당황한 듯 서너번 눈을 껌벅였다.
"이런 일은 처음인데다 저놈 꿍꿍이가."
"넌 아직 멀었다."
한숨과 함께 말을 뱉은 백주현이 소파에 등을 붙였으므로 백경일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백주현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백경일을 바라보았다.
"저놈은 진퇴를 아는 놈이다. 멀리 내다보고 있는 놈이야."
백경일의 입술끝이 조금 올라갔다가 다시 시치미를 뗀 얼굴이 되었다. 그것은 아무리 그래봐도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아니냐는 의미일 것이다. 정색한 백주현이 말을 이었다.
"6부장으로 조재철의 승진 발령을 내라. 그리고 이대진한테는 이번 중국오더 수주에 대한 특별포상을 하도록."
"특별포상이라면 어떻게."
"표창장과 특별수당 지급이야. 그것으로 이대진의 체면을 세워줘야 회사 방침의 균형이 잡힐 거다."
"알겠습니다."
백경일이 찌뿌둥한 얼굴로 일어서자 백주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명심해라. 직원들을 대할 때는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해라. 경영자는 직원들과 머리 싸움을 하면 안돼. 그러면 꼭 진다."
"가슴으로 싸 안으란 말씀이지요?"
며칠 전에 차만석으로부터 들은 말이 떠오른 그가 불쑥 뱉자 백주현이 머리를 끄덕였다.
"모른척 벌려놓고 기다려라. 어쨌든 칼자루는 네가 쥐고 있으니까 별것이 다 들어올 것이다. 그것을 선별하는 능력이 곧 경영자의 척도가 된다."
백경일은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사장실을 나왔지만 아버지가 나이 들수록 선문답같은 이야기를 자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에 이대진은 조재철과 회사 이래층의 커피숍에서 마주앉아 있었다. 조재철이 그를 끌고 내려온 것이다.
"너, 왜 이래? 날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어깨를 들썩이며 앉아있던 조재철이 물었을 때 이대진은 커피잔을 들었다.
"조선배, 그게 정상이야. 이제 그만해."
"난 네놈이 무섭다."
"우리 특수팀에서는 부장 상납이 없으니까 그것만은 알아둬."
그러자 눈만 치켜뜬 조재철을 향해 이대진이 웃었다.
"내가 양보했다는 소문도 안날테니까."
"그걸 누가 믿어?"
불쑥 그렇게 말을 받았던 조재철이 시선을 돌렸고 이대진이 다시 웃었다.
"같이 공존하자는 이야기야. 조선배, 서로 협조해서 6부를 최강 부서로 만들어 놓자구. 그래야 나한테 다음 차례가 올 것 아닌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 딴전만 피우던 조재철이 마침내 이대진을 보았다.
"너한테 신세를 졌다. 이 신세는 언젠가 꼭 갚는다."
"그것이면 됐어. 그말 잊지말어."
그러자 조재철이 손을 내밀었다. 얼굴이 다시 상기되어 있었다.
"결과야 아직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어쨌든 고맙다."
둘이는 손을 잡았고 마주보며 웃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