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로버트 할리 '호들감 이제 그만 떨자'
기사입력 2000년 01월 11일 14시 58분
얼마전 한 한국인 친구를 만나 `귀에 더께가 끼었다'는 말을 하니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더니 `더께'라는 말까지 알 정도면 정말 한국인 다 된 거리고 추켜세우는 것이었다. 흐뭇했다.
영어로 말하면 `더께'는 `encrusted dirt'다. 뉘앙스마저 아주 비슷한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친구에게 `귀에 더께가 끼었다'고 말한 이유를 지금부터 장황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바로 밀레니엄, 새천년, Y2K같은 말 때문이다.
정말이지 엄청 들은 얘기다. 신문이고 방송이고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그 말들을 쉴 새없이 쏟아냈다. 나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그때 내가 친구에게 한 말이 `밀레니엄이란 말 때문에 귀에 더께가 끼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두꺼운 더께가 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렇게 떠들던 새천년이 되었다.
이제 곰곰 따져보자.
세상이 뒤집혔나? 아니다.
정치권은 여전히 이전투구하는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여전히 교통이 혼잡한 곳은 싫다며 승차거부를 한다.
작년하고 똑같다. 뭐가 바뀌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는 Y2K 때문에 얼마나 전전긍긍했나.
라면이니 침낭이니 온갖 비상용품을 사재기했다.
그런데 결과는? 거의 해프닝에 가까운 것으로 결론나고 말았다.
기업과 정부가 우리들을 놀린 건가？ 진짜 답답하다.
그러니 누가 내 앞에서 한번만 밀레니엄, 새천년, Y2K, 이런 말 하면 쌈난다. 제발 그만 좀 해라이！
로버트 할리[방송인, 국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