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지금 일본은 - 노랑머리 파랑머리의 일본남자들
기사입력 2000년 01월 10일 12시 57분
지난해 7월 일본에는 앞이마가 훤한 반짝머리 아저씨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대사건이 있었다. `라이프'라는 발모촉진제의 개발@출시로 약국은 때아닌 문전성시를 이뤘다. 아직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초개발품인데도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지고 싶은 반짝머리 아저씨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몰려들었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라이프'의 TV광고가 3일만에 막을 내렸다.
이유는 수요에 공급이 따르지 못했기 때문. TV에 광고는 나가는데 왜 약품은 살 수 없느냐고 시청자들로부터 빗발치는 항의를 받아 제약회사가 부득이 광고를 중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일인당 한 개씩만을 팔았다. 이 규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 한 사람이 한번에 한 개 이상은 살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병을 사려면 이 약국 저 약국을 돌아다니며 사 모아야 한다. 6개월이 지난 현재 그 약에 대한 효과는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사용해 본 나의 오라버니에 의하면 진짜로 머리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아 가슴통증, 호흡곤란 등의 살례들이 심심찮게 신문지상에 보고되고 있다.
내가 구태여 남의 나라 발모촉진제에 대해서 이렇듯 길게 이야기를 한 것은 다름아닌 일본남자들의 머리에 대한 관심과 정성을 이제부터 소개하기 위해서다.
일본에는 유난히 긴머리 남자들이 많다. 긴머리붐은 연령, 세대를 막론한다. 10대 청소년이든 70대 할아버지든 간에 긴머리를 휘날리거나 혹은 중간에 끈으로 동여매고 다니는 남자들이 유난히 많다. 야채가게 아저씨, 생선가게 아저씨부터 일류 아티스타까지 직업에 관계없이 일본은 긴머리 남자들의 천국이다.
물론 한국에도 신해철 김종서 신성우 김경호 같은 연예인들이 긴머리를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사회는 어쩐지 특정분야의 특별한 사람들만 롱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긴머리 남자들은 일반인이 훨씬 더 많다. 최근에는 반백의 나이 든 남자들이 긴머리를 `올백'으로 빗어넘기는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은 이같은 고전적인 롱헤어스타일과는 달리 컬러로 자기헤어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는 신체 특정부분에 고리를 하는 것도 유행이다. 귀고리, 코걸이는 이미 한물간 멋부리기가 됐고, 요즘은 입술, 혀에 고리를 한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10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부야에 가보면 구멍이 뚫리는 웬만한 부위에는 모두 고리를 한 젊은이들이 많다. 심지어 여자의 경우에는 유두, 성기에까지 고리를 한 이도 있다. 특히 얼마전에는 한 여배우가 성기에 고리를 했다고 밝혀 10대소녀들이 너도나도 따라서 한 적도 있다.
이렇듯 신체에 고리를 하는 것으로 자기표현을 해왔던 일본남자들은 이제 헤어스타일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10여년 전만해도 살짝 노란빛을 띤 갈색머리로 염색을 했었는데, 요즘 10대나 20대들은 그런 주춤거림조차도 없다. 빨강머리가 좋으면 그 즉시 빨간색으로 염색을, 노란색이 좋으면 노랑머리로 곧바로 탈색을 해버린다. 그래서 미용실에서는 두 세가지의 컬러로 염색을 해주는 퍼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끔 파랑머리, 은빛머리로 염색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지만 주류는 역시 노랑머리다. 서양인들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 라는데 여자들은 선탠으로 피부를 까맣게 태워 가끔은 흑인으로 착각될 때도 있다. 금발에 까만 피부, 하얗게 드러나는 치아, 울긋불긋 꽃무늬가 놓여진 하늘하늘한 얇은 천의 원피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냥 올라가는 굽높은 구두, 아무리 도쿄시내에서 만난 여자일지라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아프리카여성이다.
이를 두고 진짜 아프리카인이 한 민영TV에 나와 "일본 젊은이들이 얼굴은 서양인을, 몸은 아프리카인을 닮고 싶어 머리를 물들일고 피부를 일부러 까맣게 태운다고 하지만 아프리카인에게는 금발머리가 없고, 오리지널 서양인에게는 검은 피부의 사람이 없다. 또 겉모양으로 아무리 아프리카인의 흉내를 낸다해도 속마음까지 흉내낼 수는 없다"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한 적이 있었다.
더이상 만용을 부리지 말고 본래의 일본인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아프리카인의 진심어린 충고였지만 그 자리에 나와 있던 젊은이들은 누구하나 이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