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의 레디고 '논란과 흥행의 역사'
기사입력 2000년 01월 10일 12시 57분
요즘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영화가 한편 있다.
영화 `거짓말'.
개봉전에 이처럼 말 많은 영화도 없었다. 근 10년 동안 단 한편의 영화도 보지않은 사람이라도 "`거짓말'이란 영화가 화제라며?"라고 말한다.
영화가 방송사의 프라임 타임 뉴스에 등장하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인데도, `거짓말'은 지난 8일 개봉을 즈음해 하루 건너 뉴스를 탔다.
또한 `거짓말'의 제작자인 신철씨는 음란성 시비로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는데, 영화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그가 부럽기까지 하다. `거짓말'은 폭발적인 화제성 만큼이나 관객이 잘 들고 있으니 말이다.
왜 이렇게 한 영화를 두고 말들이 많을까?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개봉전부터 영상물등급위원회, 평론가, 기자, 시민단체가 나서서 `찬반 논쟁'을 넘어 `찬반 전쟁'을 벌였다.
과거의 예를 보아도, 이런 논란들은 영화를 보지않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켜놓곤 했다.
가깝게는 지난해 `노랑머리'가 `거짓말'보다 먼저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던 `선배'격 영화다.
또 그 이전엔 `여고괴담'이란 영화가 교단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는데, 이런 논란이 흥행에 적잖게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훨씬 이전엔 `애마부인'이란 영화가 제목 시비로 덕을 본 케이스다. 원래는 한자제목이 `愛馬夫人'으로 `말을 사랑한 여자'였는데, 논란이 일자 `愛麻夫人'으로 둔갑하며 `삼을 사랑한 여자'로 바뀌었지만, 관객들은 `말을 사랑한 여자'에 관한 영화란 걸 다 알고 극장을 찾아왔다.
굳이 더 많은 예를 찾지 않더라도 `논란＝흥행'이란 공식이 성립됨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런 논란과 흥행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혹시 향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의도된 논란거리'를 만들어내, `장사'에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말 이러다간 제작자들이 자진해서 "이 영화를 등급보류 시켜달라"라고 해야할 판이다.
제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도 영화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화면을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관객이 봄으로써 완성된다. 영화가 다 만들어지면, 그것의 주인은 관객이다.
영화를 비난하고 싶으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진 이후에 비난해도 늦지 않다. 관객의 평가 이전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거짓말'도 그렇다. 영화가 호기심의 차원을 높아서 평가를 받는다면 관객이 계속 몰려들 것이고, 호기심 이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다면 금방 잊혀지는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극장 앞에서 TV뉴스 인터뷰에 응하며, 영화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흥분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영화는 영화다"란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