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89)
기사입력 2000년 01월 09일 16시 54분
신석우 경위가 반쯤 뜬 눈으로 코브라 헬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덤덤하게 서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리고 신석우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젯밤 바로 눈앞에서 침몰해간 한국 해군 함정들이 떠올랐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처절하게 싸운 해군과, 현재 고립무원의 독도수비대는 결국 같은 운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신석우는 슬프지도 않았다. 약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였다. 정확하게 신석우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발칸포의 포구가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것 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쿠아앙~.
신석우는 포탄이 발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코브라가 휘청거리며 오른쪽 동체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하얀 섬광이 일어난 직후 붉은 화염이 하늘에서 날름거렸다. 5초소에 있던 안희곤 상경이 휴대용 대공미사일 미스트랄을 발사한 것이었다.
코브라는 불덩어리로 변하며 아래 쪽으로 떨어졌다. 와그작거리며 쇠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가 잠시후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폭풍이 일어났다. 신석우가 급히 뜨거워진 얼굴을 팔로 가렸다.
폭발음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 사이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신석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제 남은 헬기들이 5초소로 몰려갈 것이 분명했다. 독도수비대가 보유한 유일한 대공무기인 미스트랄 초소는 이제 곧 박살날 것이다.
그동안 멍하게 지켜보던 수비대원들이 일제히 헬기들을 향해 소총사격을 가했다. 일본 헬기들의 동체에 탄환이 명중하며 불꽃이 번쩍거렸다. 그러나 소총탄은 공격헬기에 작은 피해도 주지 못했다. 이제 일본 헬기들이 반격에 나설 때였다.
그러나 살아남은 코브라들은 일제히 방향을 바꿔 북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도수비대의 강력한 저항에 놀란 나머지 일본 육상자위대 헬기들이 허겁지겁 도주한 것이다. 일본 헬기들은 기울어지는 태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하늘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만세！ 이겼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렸다. 수비대원들이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도주하는 일본 헬기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석우는 뿌듯한 쾌감이 가슴으로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바로 뒤에 냉정한 계산이 떠올랐다. 전투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신석우 경위가 옆구리 통증을 참으며 진지로 뛰어들어가 각 초소로 이어지는 송신기를 개방했다.
"전 초소！ 엄폐호로 철수하라！ 지금 즉시 엄폐호로 철수하라！"
독도에 휴대용 미사일까지 있는 것이 밝혀진 이상, 이제 일본 헬리콥터들이 무모하게 달려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해상자위대 전투함들이 나설 차례였다.
신석우 경위가 초소를 벗어나 엄폐호로 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진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수비대원들도 엄폐호로 향했다. 육상자위대 헬리콥터들이 멀리 날아가 이제는 헬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바다에서 진을 치고 독도를 지켜보고 있던 해상자위대 호위함들에서 일제히 연기가 피어올랐다.
-씨우웅~.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 같았다. 초소에 나가있던 부하들이 엄폐호 입구로 뛰어드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신석우 경위의 발밑을 뒤흔들었다.
뇌가 마구 흔들리는 것 같고 귀가 멍멍했다. 파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석우가 계속 뛰어들어오는 부하들을 안쪽으로 잡아끌며 이를 악물었다. 독도에 함포 사격이라니！ 이 조그마한 바위섬에 중포탄이 연속 쏟아지고 있었다. 일본은 독도를 얻지 못한다면 마치 부수기라도 할 것 같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