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15)

기사입력 2000년 01월 07일 14시 50분


대남담당비서 강철민은 65세라고 들었지만 검은 머리에 피부도 팽팽했고 육중한 체격이었다. 박동기와 이대진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한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반도호텔 특실 안이다.

"이건 비공식 회담이니 주의를 해주시오. 물론 당신들 상급자 한테는 보고를 하겠지만 말이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서님."

박동기가 환하게 펴진 얼굴로 말했다.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원탁에 넷이 둘러 앉았을 때 강철민의 시선이 이대진한테로 옮겨졌다.

"이선생님께서 나와의 면담을 강력하게 주장하셨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나는 일이 별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조금 놀랐습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박동기였다. 힐끗 이대진에게 시선을 주었던 박동기가 정색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서님."

박동기는 회담 전에 김경희로부터 이대진이 동석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는 도대체 무슨일로 만나려는 것이냐고 따지 듯이 물었다가 대답이 시원치 않자 극동전자 사장 백주현을 들먹이며 이대진의 기를 꺾으려고 했던 것이다. 어깨를 편 박동기가 강철민을 향해 웃어보였다.

"북남간의 이번 합작사업은 성공할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북남간의 유대가 더욱 강화되기를 기대합니다."

"박선생이 애쓰셨소."

"모두 비서님께서 주도하신 덕분입니다."

"곧 북남간 차관급 회의를 열도록 합시다. 먼저 예비회담이 있어야겠지요."

"그렇습니까?"

박동기의 얼굴이 금방 상기되었다.

"그럼 언제쯤 일정을 잡으면 좋을까요?"

"이번 사업이 끝나는 7월 말쯤이 좋겠습니다."

"대통령께 전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시지요."

일사불란하게 회담이 진행되는 터라 김경희가 밝아진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이대진은 탁자 위에 펴놓은 노트에 시선을 준 채 머리를 들지 않았다. 신바람이 난 박동기가 막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이대진이 불쑥 말했다.

"이번 오더의 대금지급 문제를 먼저 확실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강철민이 정색했고 김경희는 힐끗 강철민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박동기는 눈을 부릅떴다.

"이봐. 무례하게 굴지마. 그건 나중에."

목소리가 컸고 흥분된 터여서 말끝을 떨었다.

"자넨 가만있어. 나서지 말고."

그리고는 강철민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비서님. 젊은 사람이라 예의가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나 이대진은 강철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7월에 무슨 회담을 하시든 저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오신김에 확실한 대금지급 보장을 해 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음달부터는 선적 못합니다."

"이봐, 자네 나가."

이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박동기가 손을 들어 문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이대진이 강철민을 향해 웃었다.

"한국에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들으셨지요? 한국인이면서도 북남회담 운운하는 것 말입니다."

"아니 이런."

엉덩이를 반쯤 일으켰던 박동기가 강철민의 얼굴을 보고는 굳어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강철민이 빙그레 웃은 것이다. 그가 이제는 머리를 끄덕였다.

"북에도 이런 사람은 많아. 마찬가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