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의 횡설수설 '박수로 맞은 새천년 첫날'
기사입력 2000년 01월 07일 14시 11분
원고를 쓰는 시간과 그것이 실제로 신문에 실리는 날짜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어쨌든 귀하께선 새천년의 첫날을 어찌 맞았는가. 고스톱을 치면서 맞았는가, 그냥 멍하니 TV만 들여다 보면서 맞았는가.
나의 경우, 새천년의 시작은 서기 2000년 1월 1일 오후 여섯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로부터 비롯됐다.
우아찬란한 새해 첫날이었다. 미리 거창한 계획을 세웠던게 아니다. 단지 한국소비자연맹의 머리 하야신 정광모 여사를 얼결에 따라 나선게 행운을 부른거였다.
좋은 사람을 알아두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의 새해는 박수치는 일로 출발됐다.
누구를 위한 박수였는가. 부천시향이다. 귀하께선 당장 `아니, KBS교향악단도, 서울시향도 아니고, 부산시향도 아니고, 고작 경기도 부천시향 가지고 뭘 그러시오?' 할 것이다.
새해 첫날의 베토벤과 백건우와 부천시향. 그건 오맹(오케스트라를 모르는 사람들) 같은 소리다.
그날 나는 부천시향한테 엄청 박수를 보냈다. 베토벤과 백건우와 지휘자 임헌정을 위대하게 만든 부천시향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서 그랬을까. 새천년 첫날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일등석에 나란히 앉은 기쁨 때문에 그랬을까.
내 생애 그토록 양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장시간 박수를 쳐 본 적은 결코 없다. 손바닥이 활활 탔다.
세상이 다 아다시피 나는 그야말로 박수를 먹고 사는 대중가요 가수다.
나는 실로 수십년동안 본의(?)아니게 엄청난 박수를 받아왔다. 내 노래가 때론 시덥지 않았기에 나는 늘 박수의 빚을 지고있는 느낌이었다. 그 빚을 한꺼번에 부천시향한테 몽땅 갚아 버린 셈이었다.
`아! 나의 탁월한 경영능력이여!' 이건 괜한 엄살이고 나한테는 그럴만한 충분한 사연이 따로 있다.
10년이 다 된 듯하다. SBS 텔레비전이 막 개국했을 때다. 나한테 SBS 경축쇼를 부천시향과 함께 하라는 주문이 왔다. 나는 의아했다.
`뭐? 인천도 아니고 부천에 시향이 있다구?' 그러면서 나는 부천시향과 처음 접선을 했고 그때 믿거나 말거나 베토벤의 운명 `따따따 단'을 내손으로 지휘도 했다. 물론 코믹 연기로 말이다.
요컨대 시립교향악단이 그런 TV쇼프로에 등장한 건 한마디로 생긴지 얼마 안돼서 별 볼일 없는 교향악단이라는 증거였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면 운명도 바뀌는 법. 조명만 잔뜩 달린 비좁은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다시 만난 부천시향과 지휘자 임헌정은 옛날과는 영 딴판이었다.
말러를 당당하게 연주하는 최정상의 교향악단으로 변해 있는 것이었다.
나 혼자만 친 박수가 아니었다. 거기 꽉 들어찬 2천여명의 관객이 하나가 되어 친 박수였다.
박수를 먹고 사는 사람은 안다. 그건 국내 최정상의 음악과 거기까지의 노력에 보내는 경의의 박수였다. 따라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새해 첫날이었다.
PS : 그날 잠시 만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어부인 윤정희 여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조영남[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