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13)

기사입력 2000년 01월 05일 15시 31분


김재선이 이대진을 찾아온 것은 그날 오후 5시쯤이었다. 회사빌딩 지하다방에 마주앉자 김재선이 불쑥 말했다.

"이과장님, 우리 터놓고 이야기 합시다."

눈만 껌벅이는 이대진을 향해 그가 물었다.

"지금 북한의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리를 갖고 노는 것이지요."

이대진도 뱉듯이 말했다.

"김부장님도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수출대금의 회수는 가능하겠습니까?"

"사기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김재선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김경희가 회유하지 않던가요?"

"수수료 2%를 추가해서 그 1%를 나한테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승락했습니다."

"그 댓가로 뭘 바라던가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내 약점을 잡아 조종하려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 사업에 대한 이과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건을 노리는 정부 당국자들의 조급한 심리를 북한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끌려 들어가서 뭘 얻어 낸다는 것인지 장사꾼인 내 계산으로는 이해가 안갑니다."

"그러시겠지요."

머리를 커다랗게 끄덕인 김재선이 얼굴을 풀며 웃었다.

"우린 이과장님과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엽차를 한모금 삼킨 김재선이 정색했다.

"내일 이 사업을 총지휘하는 북한의 대남담당 비서 강철민이 비밀입국을 합니다. 그 자는 사업현장을 체크한다는 명분으로 입국해서 우리측의 남북교류사업단의 단장만을 만납니다."

"그런 단체도 있습니까?"

이대진이 묻자 김재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작년에 비료와 쌀을 북으로 보냈던 반민간 단체지요."

"왜 우리측 정부 당국자하고는 만나지 않습니까?"

"북한측이 거부하고 있어요."

"때려 치우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아니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호텔에 있는 놈들까지 싸잡아서 다 간첩으로 잡아 넣든지."

그러지 김재선이 다시 웃었다.

"그래서 이과장님이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김경희에게 강철민과의 회담을 강력히 주장해 주십시오. 이과장님이 한국내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으니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요?"

"대금회수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원하시고 만일 그것이 불투명하게 보이면 북한 정부의 공식 보장을 요청하십시오."

"제가 그럴 힘이 있습니까? 대리인 그만 두겠다는 카드라면 그자들한테는 코털 하나 뽑는 것 같을텐데요?"

그러자 김재선이 정색했다.

"만일 이과장님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린 이 사업을 재검토할 계획입니다."

"대통령도 이 사업을 알고 있습니까?"

불쑥 이대진이 묻자 김재선이 한동안 숨을 멈춘 것 같더니 머리를 저었다.

"통일수석이 윤곽만 보고했을 겁니다. 아마 큰 기대를 갖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통일수석이다. 이대진은 뛰는 가슴을 억제시키려고 헛기침을 했다. 대지철강 주진규 회장이 찾아내려고 했던 사업의 고위층이 통일수석 이재철인 것이다.

"좋습니다. 하지요."

어깨를 편 이대진이 말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김재선이 웃었다.

"아마 남북교류 사업단장 박동기씨와 같이 만나게 될 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