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 나이트] '물같은 여자
기사입력 2000년 01월 03일 15시 53분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은 날더러 쇠가 되라고 했지만, 나는 당신이 그저 물만 돼 주어도 충분할 것 같소이다.
겨울비 내리는 추운 날 밤 주차장. 차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나에게 우산을 내밀어 내 몸에 묻은 작은 빗물을 걷어 가는 큰 빗물이 되어 주소서！
내가 에로비안나이트인지 뭔지를 쓰느라 밤 늦도록 책상에 앉아 낑낑 대다가 이윽고 목이 탈 때, 슬그머니 혀를 적셔 주는 구수한 보리차가 되어 주소서！
당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나의 두 파편, 다솜과 우진이가 고열로 태권도도 못 가고 누워 있을 때, 그 아이들의 머리를 식혀 주는 차가운 얼음물이 되어 주소서！
미모로서 잠시 내 곁에 머무는 여자를 위스키나 꼬냑으로 부른다면, 부담없지만 가장 가까운 벗은 소주나 막걸리가 되겠죠. 이 몸이 일상의 피곤에 젖어 있을 때, 그 피로를 가시게 하는 한잔의 막걸리가 되어 주소서！
하루를 마감하고 잠을 청하기 위해 불을 끈 보금자리. 긴 대화를 하다 미처 동이 트는 것을 모르고 자꾸 말을 하다가 목이 마를 때, 윗목에 놓인 자리끼 같은 한사발의 물이 되어 주소서！
늘 사랑해서 미칠 거 같고 그래서 꼭 안고 있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은 초산 같은 화공약품이 아닌, 있는 듯 없는 듯 한 그저 색깔도 냄새도 없는 맹물 같은 여자가 되어 주소서！
나이는 먹었으되 아직 아이의 허물을 벗지 못한 나의 미숙한 `밤 기술'을 탓하지 않고 용기와 격려를 주면, 김은 나지 않지만 은근히 뜨거운 숭늉 같은 당신을 위해 물(땀)을 온 몸에서 쏟겠소이다！
나는 쇠, 그러나 쇠는 불에 약하고 불은 물에 맥을 못 추니 물인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