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의 놀멘 놀멘 '아인슈타인과 김용옥'
기사입력 2000년 01월 02일 15시 20분
목숨이 질겨서 새천년을 맞았다.
헌천년 막바지에 스포츠조선의 석광인부장한테 "칼럼 그만 쓰겠다"고 애원했다.
"늙고 지친게 원인"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석부장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인기가 상당하니까 계속 써야한다"고 강압적으로 나왔다.
결국 나는 인기가 상당하다는 말에 흥감을 부려 다시 붓을 들었다.
`아! 빌어먹을 인기!'
다시, 다시가 아니다. 드디어다. 드디어 대망의 2000년대 무대에 올라섰다.
또 화개장터를 부를순 없다.
새 무댄데 새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일단 내 실력을 내 비쳐야한다.
그러면서 관객을 꼼짝 못하게 해야 한다.
무슨 얘길 할까. 지난 연말에 만난 노처녀 신효범의 섹시한 드레스 얘길할까. 묵은 처녀 이선희의 최근 모습을 그려 내는 것으로 할까.
아니다. 붓을 꺾는 심경으로 유언을 남기는 기분으로 가자.
그리하여 나는 새해 첫 주제로 철학 교수 김용옥을 내세우기로 했다.
신효범 이선희 보다 좀 장엄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어떤 이는 `가수 나부랑이 주제에 웬 철학교수?' 그럴 것이다.
콧방귀를 끼어도 좋다.
허나 나도 가방끈이 짧은 사람은 아니다.
음악공부 신학공부에 독학이었지만 미술공부도 해봤다.
마땅한 스승이 없을까 맹렬히 찾아 봤다.
베토벤, 모차르트, 부처, 예수, 피카소, 니체, 까뮈, 사르트르 등 소문난 점쟁이가 아니라 소문난 실력가를 찾아 헤매대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미국에서 신학공부 B.A를 막 마쳤을 때다) 나는 엉뚱한 아인슈타인한테 안착했다.
`당신이 나의 마지막 스승이오.' 이렇게 됐었다.
나는 상대성 원리가 뭔뜻인지도 모르면서 불경 외듯이 무조건 사다가 읽었고, 만만한 임백천 김연주류의 친구들에겐 거품을 물고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이다.' 설파를 해댔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 지구상 최고의 잡지(우리 스포츠조선은 그보다 좀 떨어질걸) 뉴욕 타임스가 20세기 통털어 최고의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꼽은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러면 그렇지'하면서 괜히 우쭐해졌다.
그건 야릇한 우쭐함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내 최후의 스승 자리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아니다. 현재 나와 함께 새천년에 들어선 사람이다.
나는 사실 죽은 사람의 책을 뒤지는 일에 지쳤다.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일에 지쳤다.
죽은 사람한테는 한번 만나서 한잔 하자는 얘기도 할 수 없잖은가.
질문도 할 수 없잖은가.
김용옥은 멀쩡히 살아 있다.
나는 그의 최근 EBS 노자강의를 훔쳐 보면서 중얼거렸다.
`노자를 노자보다 더 잘 가르치는 그가 바로 노자 아니겠가. E＝MC'에 의거해서 말이다.
중국의 갑골문자를 조근조근 설명하는 어부인 최영애 교수와 칠판 앞에 나란히선 김용옥 부부를 보고 나는 얼마나 가슴 아렸는지 모른다.
극도의 아름다움은 아픔일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공자 맹자식으로 김용옥을 `김자'로 부르기로 했다.
내 경우는 뼈빠지게 공부해봐야 이름이 너무 조잡하다. `조자'다.
그래서 예전에 때려 치웠다.
우리는 우리 것 단기를 서기한테 빼앗기고도 헬렐레다.
어영부영하다간 독도도 뺏길 판이다.
그러나 나한테는 죽은 아인슈타인보다 살아 있는 우리 것 김용옥이 있어서 서기 2000년도 별로 무섭지 않다. 조영남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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