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음세대를 위한 희생 (2)
기사입력 1999년 05월 20일 14시 34분
책장 비슷한 가구 옆에는 화상 터미널과 유닉스1000이란 운영체계로 움직이는 슈퍼 컴퓨터가 그 디스켓들과 연결돼 있다.
이 집 아들이 안방으로 들어오자 화상 터미널이 켜진다.
그 안에 그와 거의 나이가 비슷한 듯한 여자가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고감도 음원 서버를 장착한 사운드 블라스터 메가사운드(SB-MS)와 연결이 된 은색진동판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여자의 합성 목소리가 그에게 전달된다.
"동사무소는 잘 갔다왔니? 그래… 날짜는 언제로 결정했니? 난 지금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서 백화점 쇼핑을 하고, 네 아빠와 만나기 위해 1996년형 신촌의 독다방에서 커피를 맛보고 있단다. 너 처 될 사람은 내일쯤에나 가상현실로 들어올 수 있다니, 모래쯤에나 한번 얼굴보려고 생각중이다. 이미 사돈은 며칠전에 만나봤다. 사돈이 너 언제쯤 들어오냐고 하는데, 아직… 네가 날짜를 결정…."
그가 우울한 표정으로 주민등록증을 모니터 위에 놓인 화상 카메라에 보이면서 얘기한다.
"어머니랑, 같은 나이네요. 후… 모르겠어요. 그냥 착잡해요. 걱정도 되고, 그냥 이상한 느낌도 들고… 우울하기만 해요."
그러면서 화상 터미널 모니터에 붙어있는 어머니의 낡은 주민등록증을 검지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면서 화면속 어머니를 보고 있다.
"어떻게 하겠니? 정부정책이니 따라야하고…. 더불어 UN의 장려책이기도 하고, 너도 알겠지만, 지구상에 멸종되지 않은 동물은 이제 인간과 바퀴벌레 뿐이잖니, 이마저 이젠 얼마 안가서 멸종될 지 모른다는데…. 내가 가상현실로 들어올 때에도 식용 식물들은 거의 사라지고, 그땐 먹을 것이 들꽃 밖에 없어서…. 어쩔수 없이 이 정책을 국회에서 승인할 때, 사람들 반대도 많았지. 그러나 어쩌겠어? 인간의 왕성한 식욕 때문에 더 이상 지구상엔 먹을 것이 없는데, 이렇게라도 문명을 유지해야지…."
"그렇지만, 너무 비인간적이에요. 어떻게 그런….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그렇게 기계 속에 갇혀서 살 바에는…."
"얘야！ 어떻게 그런 무서운 생각을…. 그것도 이 엄마가 듣는 앞에서….얘야！ 그렇지 않단다. 이 안에서 넌 지구에 에너지가 바닥나기 전까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을 뿐더러, 더더욱 이곳 가상현실의 문화시설은 무척 정교해서 네가 가상현실에 있는 것 조차도 인식못한단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건 너무 비인간적이에요. 사람을 어떻게…."
"그렇지 않단다. 넌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장했고, 서서히 노화를 시작하게 되겠지. 그 순간 육체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돼버린단다. 네 자식의 생명 유지와 성장을 위해 넌 희생되지만…."[계속]
글·이정우(하이텔ID:Van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