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서세원-훈훈한 아버지의 용돈 철학
기사입력 1999년 05월 19일 14시 51분
학창시절 소풍을 가거나 수학여행을 갈 때 아버지께서는 잊지않고 물어보시는 것이 하나 있었다.
"느그 반에서 용돈 제일 많이 가져오는 애는 얼마갖구 오냐?"
만약 내가 "천원이요"라고 대답을 하면 내손엔 천백원이 쥐어진다.
그러면 나는 우리반에서 가장 여유롭고 부유한 왕자가 된듯한 자신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나이는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야 한다. 절대 기죽으면 안된다'라는게 아버지의 생활철학이셨던 만큼 우리 아버지는 대단히 통이 크신 분이셨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집이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든가 내가 누릴 것을 다 누려보며 자라온 건 아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능력이 닿는 선에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후, 아버님이 집에 오셔서 노인정에서 꽃놀이를 가신다고 말씀하시며 회비를 달라고 하신적이 있다.
나는 회비가 5만원이라는 말씀에 아무 생각없이 5만원을 봉투에 넣어드렸다.
물론 아버지는 서운해하셨다.
당신을 보고 자란 나라면 당연히 천원, 이천원 이라도 웃도는 액수의 돈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셔서였다.
그렇다면 나는…?
수학여행을 가는 아들 녀석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희 반에서 용돈 가장 많이 받는 애는 얼마를 가져오니?"
아들은 "만원이요"라는 대답을 했다.
나는 금새 아버님을 흉내냈다.
만천원을 손에 쥐어 주며 "그럼 니가 최고겠다"라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아들의 반응은… "에이 걔네집이 원래 얼마나 부잔데, 내가 천원 더 가져왔다고 최고부자가 돼?"
나의 아버지와 나만해도 그렇다.
눈앞의 작은 것만으로도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아닌가 보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행복의 수치를 재빠르게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싶은 과자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구멍가게 집 아들을 부러워하던 시절, 동네에서 새총쏘기를 제일 잘한다는 이유로 근사한 장군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그 시절을 생각해 보자.
눈에 보이는 작은 행복에 세상을 얻은 듯 감동을 받았던 시절, 작은 기쁨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기쁨도 제대로 만끽 할 수 있지 않을까? [방송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