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강우석-한우물 파는 영화인에 박수를…
기사입력 1999년 05월 18일 14시 32분
영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도박처럼 한번 맛본 사람은 결코 영화판을 떠날 수 없다.
영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다른 일로 전향을 했다가도 다시 돈을 벌어 영화 쪽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나를 흥행에 관한 운을 타고났다고들 하지만 나 역시 만드는 작품마다 죽어라 안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한국영화계가 힘들다.
되는 영화는 상한선 없이 잘 되고, 안되는 영화는 투자된 제작비 10% 조차 건져올릴 수 없는 실정이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입장객수 15만명이나 20만명이라는 중간흥행성적 없이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의 흥행 스코어만 있다.
`쉬리' 이후 많은 사람들은 한국영화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쉬리'이후 개봉된 한국영화들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의 인생조차 망가뜨릴 정도로 흥행에 실패했다.
모든 영화인이 그렇듯이 그들은 영화만을 위해 오로지 한 길만 걸어왔던 사람들이다.
단지 영화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집까지 담보를 잡혀가며 작품을 10년만에 완성하기도 한다.
그 중 나와 친한 친구도 있다.
얼마전 `북경반점'을 만든 안동규대표이다.
그의 뚝심은 영화계에 있는 사람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대단한 영화 마니아이자 제작자이다.
그의 영화사랑은 개런티에 민감한 배우들조차 그 마음에 감동해 말도 안되는 개런티를 받고 `북경반점'에 출연했을 정도다.
최근에 `구멍'을 어렵게 제작하고 있는 시네락 픽쳐스의 권영락대표 역시 안동규대표와 비슷한 캐릭터다.
그역시 `박대박'으로 집까지 날렸으면서 다시 영화를 제작한다.
도대체 영화가 뭐길래 가족까지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가면서까지 저런 짓을 하나하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인들이 있기에 한국영화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또 장래에 대한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 몇몇 충무로인들이 영화제작으로 돈을 벌어 부동산이나 외화수입으로 개인부를 축적하는데 급급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멋진 재기를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영화속에 사람을 담고 싶어하며, 또 영화적 철학을 갖고 있는 심지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내일 써야할 제작비가 없어 노심초사할지라도, 그들의 열정과 진실은 결국 한두편의 흥행으로 떼돈을 버는 장사치들보다 더 커다란 비전을 갖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난 그들이 성공하리라 믿는다.
그들을 동료라 생각하는 많은 영화인들이 있으니까….
나는 이 오래된 친구들에게 나의 미미한 손을 내밀 것이다.
그래서 한국영화계에 어느날 갑자기 굴러온 장사치들이나 사기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진실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이 영화계의 주역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우리의 젊은 세대들의 가슴에 밝은 희망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