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인터뷰] '삼진 당하더라도 4구는 싫어'
기사입력 1999년 05월 18일 14시 11분
만으로 스물셋. 오늘보다 내일이 궁금해지는 신세대지만 그는 벌써 정상에 섰다.
삼성 이승엽. 서글서글한 눈매와 영화배우같은 세련됨과는 어울리지 않게 논리정연하고 예의바르다.
세상물정 모르는 귀공자같지만 주위사람들은 최고의 후배, 최고의 선수, 최고의 남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18일 현재 36게임에서 홈런 17개로 당당 1위.
게임당 0.47개로 거의 하루 걸러 한번씩 야구장을 두쪽으로 가르는 아치를 그렸다.
"언제나 팬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고 싶다"는 멋진 남자의 야구와 인생을 들어봤다.
-믿을수 없는 홈런페이스다. 도대체 몇개나 날릴 셈인가.
▲단정짓고 싶지 않다. 숫자에 얽매이다 보면 슬럼프에 빠질지도 모르는일 아닌가.
프로 5년차에 접어들면서 나름대로 집중하는 법이 몸에 익었다. 요즘은 타격감각이 너무 좋아 내심 걱정이다.
-'이승엽식 타격'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주위에선 내가 '물흐르듯 가볍게 친다'고 말하는데 난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때린다. 겨우내 충실한 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몸무게는 그대로여서 옷맵시는 난다(하하).
힘은 현대 (박)재홍이 형이나 해태 (양)준혁이 형에 떨어지지만 공을 때리는 순간적인 힘과 타이밍엔 자신있다.
-대학에 가지 못한 사연이 있나.
▲말못할 사연이 많다.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았고 정말 힘들었다. 삼성에 입단하기전 2개월간 한양대에서 합숙훈련을 했다. 숨쉴틈도 주지 않는 빡빡한 생활과 잦은 얼차려로 단 하루도 배겨나지 못할 것 같았다.
부모님은 야구 그만둬도 좋으니 대학졸업장이라도 받으라고 하셨지만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작년은 아쉬움이 남는 한해였는데.
▲작년엔 동계훈련을 전혀 못했다. 연봉문제도 있었고 나가노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등 잦은 행사로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여름엔 체력이 떨어져 방망이를 못들 정도였다. 시즌 개막이 한달뒤였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때의 부진은 내 야구인생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최대 라이벌은.
▲역시 우즈가 아닐까. 정말 좋은 타자다. 수비때 타석에 선 우즈를 쳐다보면 꼭 '한방' 칠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즈가 한국에 있는 동안 시간을 내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잦은 4사구가 거슬리지는 않나.
▲홈런이 늘수록 정면승부는 줄어들 것이다. 4구는 죽어도 싫다. 차리리 삼진을 당하지. 난 참 성격이 급하다.
올초 김기태 선배가 "승엽아, 기다려라. 기다리면 공이 온다"고 말해줬다. 오죽하면 휴대폰 액정에 '여유'라는 말을 넣었을까.
-여자친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계속 만나고 있다. 성격이 좋고 마음도 통한다. 내나이에 결혼을 생각한다는 자체가 우스운일 아닌가.
결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생각이다. 물론 부모님 마음에 들어야 되겠지만.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격언은.
▲'진정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참 좋은 말이다. 중학교 선배인 한화 이정훈 코치님이 물려준 좌우명이다. 개인적으로 이코치님을 존경한다.
-잘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지는 않는가.
▲난 모르겠는데 남들이 그런다(하하). 어릴때는 쌍꺼풀이 진했는데 크면서 눈꼬리가 처져 불만이다.
하지만 비디오를 보니 타석에서는 눈이 엄청 커지더라. 얼굴 다른 부위에 자신이 없으니 그래도 매력포인트는 눈이다.
-몇살까지 그라운드를 누빌수 있을까.
▲한 35세쯤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 성적이 좋으면 40살까지도 생각한다. 연봉은 올라가는데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 매년 타율 2할8푼에 20홈런 이상을 칠수 없으면 언제든지 옷을 벗겠다. 팬들이 아쉬워할때 떠나겠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음악을 무지 좋아한다. 특히 가요. 작년 오디오를 장만했는데 스피커 음질이 죽여준다. 여행을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아직 제주도도 못가봤다.
프랑스에 가보고 싶다. 왠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다.
-누구랑 친한가.
▲야구를 잘하려면 친구를 제대로 사귈수 없다. 한화로 이적한 (최)익성이 형이랑 늘 붙어 다녔다. 스타일도 비슷하고. 떠날때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는 같은 팀에서 다시 뛰고 싶다.
-'이런 여자는 정말 꼴불견이다'고 생각한 적은 있는가.
▲담배피는 여자가 싫다. 내가 좀 고리타분한 건지. 남자가 쫄티에 쫄바지입고 무스바르고 귀고리한 것도 질색이다.
난 목걸이 정도만 한다. 부모님이 사주신 건데 내이름중 승(承)자가 새겨져 있다.
-누구에게나 내리막길은 있는데.
▲솔직히 두렵다. 초등학교때부터 야구 못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너무 곱게 자란탓인가. 내가 내자신에 만족하지 못할때는 정상에 섰을 때를 생각하며 두배로 땀을 흘리겠다.
◇이승엽 신상명세
▲생년월일=76년 8월 18일(양력) ▲가족사항=이춘광씨(56)와 김미자씨(49)의 2남 1녀중 막내 ▲투타=좌투좌타(내야수) ▲신장=1m83 ▲몸무게=85㎏ ▲허리=32인치
▲허벅지둘레=26인치 ▲팔뚝둘레=40㎝ ▲발=285㎜ ▲혈액형=B형 ▲승용차=없음 ▲주량=소주 반병 ▲담배=안피움 ▲취미=음악감상, 수영 ▲별명=라이언킹
▲춤=분위기를 맞추는 정도 ▲출신교=대구 중앙초등→경상중→경북고→삼성 ▲99연봉=1억1000만원 ▲계약금=1억3000만원(95년)
▲97년 주요수상=페넌트레이스 MVP, 97년 1루수 골든글러브, 홈런 1위(32개), 타점 1위(114개), 최다안타 1위(170개), 타율 2위(0.329), 스포츠조선 레간자대상 ▲98년 주요수상=장타율 1위(0.621), 홈런 2위(38개), 타점 2위(102개)
[대구=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