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2년 넘게 지구 38바퀴 비행
기사입력 1999년 05월 17일 14시 33분
나는 2002년 월드컵 유치활동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라의 큰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특히 월드컵 같은 일은 아마도 1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빅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유치 활동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나라를 다녔다.
비행기를 탄 거리를 보아도 94년에 50만㎞, 95년 60만㎞, 96년 5월말까지 40만㎞로 모두 150만㎞ 등 대략 지구를 38바퀴 돈 셈이었다.
지구에서 달까지 두번을 왕복한 거리에 해당된다고 한다.
2년 5개월 동안 391일을 해외에서 보냈으니 언제 또 다시 같은 기간에 이만한 여행을 할 기회가 있으랴 싶기도 하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여러 나라의 문화와 풍물을 접하게 된 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좋은 친구를 사귄 것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세계 축구계에서 활동해온 FIFA 집행위원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은 것은 큰 인생 공부였다.
특히 이미 작고한 멕시코의 끼예르모 카네도 FIFA 수석 부회장은 아직도 인상 깊다.
그는 96년 당시 76세로 건강이 나빠 옆구리를 뚫고 거기에 건강 보조기를 달고 다녔다.
케네도는 66년 이후 FIFA 집행위원으로 있으면서 70년과 86년의 멕시코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두 대회 모두 이 사람이 혼자 유치한 것이나 다름 없다.
70년 유치 당시 경쟁국은 아르헨티나였다.
그때만 해도 월드컵개최국은 130여개 회원국이 모인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70년 월드컵의 개최지는 64년 일본 동경 올림픽 대회때 열리는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카네도는 61년에서 63년 사이에 이중 주요 60여국을 선정하고 한나라를 최소한 두번 이상 방문했고 어떤 나라는 네번까지 방문했다고 한다.
내가 멕시코를 방문하자 그는 자기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당시에는 항공편도 지금보다 힘이 들었노라며 나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유치 막바지가 되면 누군가가 유치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해올지도 모르오. 그렇다고 절대 물러서면 안돼요. 내가 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위해 열심히 뛰자 총회 이틀전 전임 스탠리 라우드 회장이 내게 사퇴하라고 압력을 넣습니다. 그때 나는 죽으면 죽었지 사퇴를 못한다고 버텼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이처럼 예기치 못했던 일이 생기지만 꿋꿋이 참고 넘기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힘을 복돋워주었다.
카네도는 젊었을 적에 투우사로 활약한 적이 있으며, 투우에 받혀 큰 부상을 입고 몇달간 입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70대 노령이면서도 청바지 차림으로 스포츠．카를 직접 몰고 호텔까지와, 나를 태우고 자기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서 아벨란제 회장이 그의 아이들의 카톨릭 대부이기도 했다.
언제나 내게 다감하고, 멕시코에 가면 그의 집이나 별장으로 초대하여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 그는 진정한 스포츠맨으로 참다운 우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러시아의 비아체슬라브 콜로스코프 집행위원도 내게 호의적이었다.
그와 나는 테니스를 같이 쳤다.
유럽축구연맹(UEFA)회장인 레나트 요한손씨와도 가깝게 지냈다.
스위든 축구협회장을 역임한 그는 조용하고 성실한 북구신사이다.
그는 FIFA내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유럽 회원국들의 선봉에서서, FIFA 개혁을 주장했다.
요한슨회장과 나는, 서로 친분이 있는 이홍구유치위원장, 잉글벌트 칼슨 스위든 수상과 함께 회동하기도 했다.
요한슨 회장은 나에게 "당신은 대단한 fighter(투사)이다"라고 평한 일이 있다.
나는 "그런 칭찬은 부담스럽다. 나는 peace－maker(평화주의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월．화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