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통곡의 벽(7)
기사입력 1999년 05월 16일 15시 41분
맑은 투명색의 눈동자에는 검은색의 동공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조금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하얀 솜이 살며시 삐져나와 있었다.
이보다 더한 두려움은 없었다. 나의 몸은 이미 온통 얼어붙은 것 같았다.
반대편에 역시 꼿꼿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도 짧고 단정한 머리에 역시나 햐안색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보기에 남자였다. 그도 역시 벌거벗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더 이상 비춰보진 않았지만 남자도 여자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테이블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온통 흔들리면서 마치 자석에 끌려들어가듯 테이블 중앙에 놓여있는 그 무엇을 보기위해 흔들리는 다리를 천천히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플래시 불빛에 묻어 어느새 그것이 천천히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듯말듯한 그 냄새는 그 남자와 여자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박제가 된 두 사람이 의도적으로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물건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방부제액, 바로 포르말린 용액에서 흘러나오는 약품 냄새였다.
그것은 두 남녀, 아니 추측컨대 부부였을 듯한 두 사람처럼 박제되지 못하고 독하디 독한 방부제 안에 잠겨 조금은 큰 원통형 유리관 안에 밀봉되어 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은 부분만을 밝힐 수 있는 손전등은 탈색되어 너무나도 하얀 살색을 가진 그것을 아주 자세히 빨갛게 달구고 있었다.
그 엄청난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이제 갓 태어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아기였다.
그랬다. 그 아기는 자신의 고통과 박제된 엄마, 아빠를 지켜보면서 철문 밖, 그 막힌 벽을 향해 계속 울면서 그 벽을 '통곡의 벽'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실을 가득 메운 어둠이 한꺼번에 공포로 변했다. 살아 움직이는 아우성 같았다.
순간 전 주인의 얼굴이 어둠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우리 부부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던 말들이….
"박제한 모든 짐승의 고기 맛을 보았지요. 그게 취미거든요. 핫하하…."
빌어먹을 그 의사가 입 속에 고인 침을 은근슬쩍 목구멍으로 밀어넣던 표정까지 어둠속에 또렷하게 떠올려졌다.
그앞에 '통곡의 벽'으로 가로 막힌 지하실 안쪽에는 이미 박제가 되버린 두명의 사람이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난 더 이상 입 속에서 뛰쳐나오는 비명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그때 어스름한 달빛이 희미하게 드리워진 지하실 입구에 비스듬히 걸려 있던 철문이 바람에 밀려 '끼이익' 하는 기분 나쁜 철재 비틀림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이번 회 끝＞
[글·이정우(하이텔ID:Van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