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출동] 남자보다 더 집요한 여성스토커
기사입력 1999년 05월 11일 14시 24분
`스토킹'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스토커들의 집요한 괴롭힘에 피해자들은 몸서리쳤고, 살인으로까지 치닫기도 했다.
연예인 스토커 사건 등 피해가 속출하자 최근 국회에선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만일 당신이 결혼을 앞두고 잘 알지 못하는 여자로부터 매일 협박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면….'
어느 남자 회사원이 1년 동안 겪고 있는 끔찍한 스토킹 피해 사례를 밀착 취재했다.[편집자 주]
대기업 기획실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모씨（33）.
강씨는 지난해 5월 평소에 매주 한번씩 성경을 공부하는 친목모임에 참석했다가 한 여성을 만났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문모씨（31．여）였다.
1m63 정도의 키에 얼굴이 조금 통통한 문씨와 강씨는 별 감정없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이것이 `끔찍한 1년'을 맞는 시작이 될 줄은 강씨는 꿈에도 몰랐다.
모임을 가진 일주일후.
강씨는 뜻밖에도 문씨의 전화를 받았다.
강씨는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강씨에게는 결혼할 여자 친구가 있어 더 이상 관심을 두기 싫었다.
그리고 한달 뒤. 전화가 또 왔다. 이번엔 회사 전화가 아닌 휴대폰이었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강씨는 궁금했으나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후 문씨는 전화를 몇차례 더 해왔다. 이때부터 강씨는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밤이면 당신의 영（靈）이 나타나요. 당신과 꼭 결혼해야 한다면서…."
문씨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강씨는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한편 휴대폰 전화 번호도 바꿨다.
하지만 문씨는 바꾼 휴대폰 번호까지 집요하게 알아내 전화를 계속 했다.
이 집요한 추적은 어느덧 해를 넘기고 올 2월 절정을 이뤘다.
문씨가 불현듯 친목 모임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날 마침 강씨는 참석하지 않았다.
강씨가 안 온 것에 화가 난 문씨는 느닷없이 병을 깨며 다른 회원들에게 "강씨를 데려오라"며 난리를 피워댔다.
결국 회원들은 경찰까지 불러 사태를 수습했다.
그 사건 후 문씨의 전화 스토킹은 더 심해졌다.
몇초 간격으로 걸려오는 문씨의 전화는 1시간에 200여통이 올 정도로 불이 났다. 강씨의 직장 동료들은 이때 전화 벨소리만 나도 진저리를 쳤다고 말한다.
강씨는 불면증에 위장병에 시달렸고, 몸도 바짝 말라갔다. 그는 동료와 상사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까지 됐다.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기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문씨는 지난 2일 강씨의 회사에까지 나타났다. 강씨는 막무가내로 사무실로 들어오려는 문씨를 말리다 멍만 든 채로 `도망자' 신세가 됐고, 회사 경비들은 그녀를 막기 위해 총출동 되는 등 소란까지 일었다.
파출소로 끌려간 문씨는 그녀는 당당한 태도로 "사생활 문제에 이렇게 사람을 강제로 끌고 다녀도 되냐"며 연행해간 경찰들의 뺨까지 때렸다는 것.
경찰도 붙잡아 둘 근거가 없다며 두손을 들었다.
강씨는 속수무책이었다.
112에 전화를 해 하소연을 해봤지만 여자 스토커라는 말에 경찰은 대수롭잖다는 반응 뿐이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죽이겠다"고 문씨가 공언하고 다니자 강씨는 더 불안해졌다.
강씨는 "올해 안에 결혼을 해야하는데, 여자 친구는 지금까지는 이해를 해주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 동료인 박모씨（30）는 "스토킹이 이렇게 회사나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주는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지금 강씨는 문씨의 전화 내용을 녹취하고 고소장을 준비 중이다.
경찰도 손을 쓸 수 없고, 스스로 해결할 길도 막막해 법에라도 호소하기 위해서란다.
박종학 신경정신과의원 원장（50．은평구 불광동）은 "스토커는 거의가 편집증 환자이기 때문에 정신 질환의 하나로 보면 된다"며 "요즘 스토킹을 당해 우울증에 걸리거나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 병원을 찾아 오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박원장은 또 "초기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스토킹이 점점 심해져 극한 상황에 가서는 살인 등 끔찍한 경우도 생길 우려가 있다"며 "스토커들은 보호감호소로 보내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