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공동개최 제기했다가 日돌변
기사입력 1999년 05월 10일 14시 08분
일본과 월드컵 유치 경쟁을 벌이던 초창기에 나는 일본이 2002년 월드컵 개최를 한국에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모두 4회 진출한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지만 일본은 한번도 월드컵 본선에 나가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월드컵은 당연히 한국에서 개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개최국은 자동진출되기 때문에 월드컵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축구 강국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유치위원회의 정관에도 명기 되었듯이 월드컵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으려고 하는 것인 만큼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일본은 당연히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국의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90년 5월 아벨란제 회장이 로마에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 "2002년 월드컵 대회는 아시아에서, 그중에서도 통일된 한반도에서 개최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을 수 없이 거론 했다.
또 남북분단 문제에 관해서는 94년 4월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가 일본의회 연설에서 "일본은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이홍구 유치위원장이 94년 7월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으로 임명되고 구평회 무역협회 회장이 새 위원장이 되었다.
구위원장은 9월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은 월드컵을 한국에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는데 마침 새로 부임한 일본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대사는 구위원장을 찾아 "양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94년말 한승주외무장관과 일본의 고노 료헤이(河野 良平)외상이 만난 자리에서 고노외상은 한．일 공동개최론을 제기 했다.
그의 제안은 한．일간의 유치경쟁이 격렬해지면 양국 국민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순수한 뜻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일본은 태도를 바꾸어 공동개최 발언을 모두 취소하게 된다.
야마시타 대사가 구위원장을 찾아와 공동개최를 반대한다는 뜻이 담긴 한장의 공문을 들고와 읽어주고는 "이것이 일본의 움직일 수 없는(unswerving) 공식적인 입장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 버렸다.
국내 일부에서 일기 시작한 공동개최론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단독 개최가 최선의 목표이고 공동개최가 차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우선 일본을 앞서는 지지세력을 확보 하지 않고서는 공동개최도 바라 볼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단독개최든, 공동개최든 우선 확실한 지지세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서는 `총론'이고 다음 단계로 `각론'중의 하나로 공동개최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만일 일부 인사들이 중구난방으로 외부 인사와 접촉해 공동개최를 부탁한다면 우리의 약세를 노출할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월．화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