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피(4)
기사입력 1999년 05월 06일 14시 13분
형택은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사용할 수가 없다.
자신이 지나온 길은 이미 피의 바다로 돼 있을 것이다.
돌아보지 않아도 자신의 몸이 한 짓이므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자신의 몸을 장악한 이 인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쿵쿵쿵쿵.'
발소리가 고막을 자극한다. 기억 속에서 본 장면이다.
아까의 이상한 체험은 이 피의 주인이 보여준 것일까?
발바닥이 보이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슬슬 고개를 올리고 있다.
발 …종아리 …허벅지 …허리 …배 …가슴 …목.
아직까지 그 윗부분은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고개가 자신의 몸을 장악한 존재의 의지로 서서히 들려져 간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하지만 왜일까?
두려운 감정과 동시에 가슴 저 밑에 있는 호기심이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호기심은 일순간에 두려움을 물리치고 자신의 의지를 장악한다.
고개가 드디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높이로 들려졌다.
반짝이는 엘리베이터 문에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고 있다.
약간은 실망감이 느껴진다.
자신의 몸이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듯, 자신의 얼굴도 이미 다른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평범할 수가….
악마의 얼굴로 변해 있었으리라는 자신의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평범한 사람의 얼굴. 단지 눈빛만이 다른 점이지만….
눈 두개, 코 하나, 콧구멍 두개, 입 하나, 귀 두개…. 그리고 짙은 눈썹과 약간의 흉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평범한 얼굴.
"땡！'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모양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얼굴이 반으로 갈라져 보이지 않게 되어 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이 영혼의 주인에게서 피를 받은 것일까?
자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체격이 모두 틀리고….
팔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두명.
다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두명.
배에 상처가 나서 피를 질질 흘리는 사람이 세명.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두명.
아마도 한사람 몸의 일부를 나눠가진 모양이다.
이미 의식 밖에 남지 않은 형택은 이 병원을 저주했다.
자신은 `모르모트'가 된 것일까?
다른 사람이 나눠가진 몸의 찌꺼기인 피를 자신에게 수혈해 준 것일까?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형택의 몸은 형택의 의지와 상관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형택의 마지막 남은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계속]
/하이텔/악몽따라&무진교(go sg90)
※지난회 보기:스포츠조선 인터넷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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