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파워투수' 실링이 주는 교훈
기사입력 1999년 05월 03일 14시 27분
3일（이하 한국시간） LA다저스와 필라델피아전을 지켜보는 박찬호（26）의 눈매는 유난히 예리해 보였다.
당대 최고의 파워 피처로 각광받는 필라델피아의 커트 실링（33）과 다저스의 케빈 브라운（35）이 격돌한 이 경기는 실링의 완승으로 끝났다.
2년 연속 300개의 삼진을 잡아낸 실링의 투구에서 박찬호는 공격적인 피칭의 진수를 실감했다.
실링은 이날 최고시속 155㎞의 강속구를 선보였고, 145∼152㎞의 직구를 섞어 던져 외견상으로는 오히려 박찬호의 평소 구질에 뒤지는 느낌마저 있었다.
그러나 실링은 철저히 직구를 주무기로 삼았다.
포크볼과 슬라이더, 커브를 간간히 던졌지만 모두가 강속구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한 보조무기에 불과했다.
8회 초반까지 던진 실링은 7회까지 115개의 공을 던졌고, 이 중 66％인 76개가 강속구였다.
직구에 특히 강한 몬데시와 셰필드, 벨트레 등 3타자에게 총 12개의 변화구 위주 승부를 펼친 것을 제외하면 강속구의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6회 무사 만루에서 실링은 4회에 2점홈런을 맞은 헌들리를 맞아 7개의 강속구 끝에 포크볼로 삼진을 잡았고, 이어 홀랜스워드를 7개 연속 강속구로 연속 삼진 처리했다.
3－2 박빙의 리드에서 게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실링의 무서운 강속구 승부였다.
박찬호의 전 동료 노모는 "그 정도의 위력이라면 강속구로만 승부해도 완봉승이 가능하다"고 박찬호의 강속구를 극찬한 바 있다.
박찬호의 강속구는 당대 최고라는 실링이나 브라운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지만 그 강속구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서 아직 실링이나 브라운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체인지업이 박찬호의 강속구를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고, 예리한 커브볼은 상대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결국 박찬호의 결정구는 강속구가 돼야한다.
`파워 피처'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하드웨어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박찬호에겐 그것을 실전에 적용할 소프트웨어, 즉 자신감 넘치는 공격적인 자세를 머리에 각인하는 정신적인 단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필라델피아（미 펜실베니아주）＝민훈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