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천원전] ○윤현석 5단 ●이창호 9단
기사입력 1999년 04월 28일 14시 55분
제11보(101∼153)＝지난기 4강에서 만났던 두 대국자가 공교롭게 이번기 1회전에서 마주쳤을 때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고 생각한 쪽은 당연히 약자인 윤 5단이었을 것이다. 정상을 향해 가기위해선 언젠가 만나야할 상대이고 다만 그 시기가 좀 이르다는 것 외에 크게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 쪽도 물론 윤 5단이다.
단 윤 5단이 신경을 쓴 것은 바둑의 승패보다 내용이었다. 작년 준결승에서 패했을 때 속상했던 것은 전혀 `자기 바둑'을 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만큼은 승부를 떠나 여한없는 바둑을 둬보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 9단 앞에만 서면 그것 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국후 이 판을 복기하는 윤 5단은 시종 자기 바둑을 두지 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승부는 흑이 반면 20집가량 남는 대차의 국면이다. 이 정도 차이라면 벌써 돌을 거두었어도 별 이상이 없지만 백은 던질 시기와 명분 조차 잃고 있는 상황이다. 백 4 보강이 불가피할 때 흑 5∼9까지 기분좋은 선수권리. 그리고 흑 11로 마지막 큰 끝내기 마저 흑의 차지가 되었다. 백은 패배를 곱씹듯 53 이후 끝까지 판을 메꾸며 계가까지 마쳤는데 이후의 20여수는 총보로 미룬다.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