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49)

기사입력 1999년 04월 28일 14시 55분


아홉 척의 배는 일렬로 선 채 안개 사이로 난 통로를 조용히 흘러갔다. 뱃전에 와 부딪히는 물결소리도 고요했다. 식스는 불길한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며 배 옆의 안개를 바라보았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안개지?' 안개의 통로는 변합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개는 마치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트로포스가 헤쳐놓은 곳과 다른 안개더미 사이에는 마치 벽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배의 선장들 역시 주위의 안개를 쏘아보거나, 물길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식스는 언짢은 기분으로 갑판에 몰려선 선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잡담도 없이 조요히 주위의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스의 눈이 좌현 중간 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멈추었다.

노잡이 오스발이 그곳에 있었다. 오스발은 뱃전에 팔을 괴고는 다른 해적들과 같이 꿈틀거리는 안개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놈이 왜 갑판에 있는 거지? 식스는 당황하여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스발 자신이나 그의 옆에 있는 해적들 모두 오스발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식스는 어리둥절했다. 키 선장님은 분명히 쇠사슬을 채우지 말라고 하셨지. 어, 그런데 배 안의 이동의 자유도 주셨던가? 식스는 혼란스러웠다. 저 놈이 갑판에 올라와도 되던가, 안되던가? 노잡이가 왜 갑판에 올라온단 말이지? 잠깐, 노라고? 언제부터인가 노젓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뱃전에 와 부딪히는 잔물결 소리뿐이었다.

식스는 힘들게 자유호의 좌우를 바라보았다. 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식스는 고개를 더욱 힘들게 돌려 다른 배들을 바라보았고, 선단의 모든 배의 노가 정지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가 왜… 정지했을까… 노가 움직여야… 되나? 식스는 더욱 당혹했다. 노가 왜 움직여야 하지? 노가 뭐지? 노… 바닷물을 젓는 것. 노가 바닷물을 저으면? 그런데 왜 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신경쓰이는 거지? 식스는 주춤거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돛은 모두 축 늘어져 있었다.

이 고요한 안개 속에 바람이라곤 한 점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해적선들은 모두 돛을 늘어뜨리고 노는 정지시킨 채 조용히 안개 속을 흘러가고 있었다. 식스는 불안을 느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식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이곳은 배… 배가 뭐지? 식스는 고민하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배가 무엇이든, 내가 무엇이든, 그 사실이 나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럼 무슨 상관이지. 식스는 마음 속으로부터 일어나는 약간의 저항을 느꼈지만 곧 잊어버렸다.

아홉 척의 배는 자신을 잃은 선원들을 태운 채 유백색의 안개 사이로 끊임없이 흘러갔다. 무겁게 늘어진 돛은 움직일 줄 몰랐고, 선원들은 배의 작은 흔들림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며 촛점을 잃은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스는 눈꺼풀이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눈꺼풀을 감을 수 없었기에 식스는 좌현에서 오스발이 느닷없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는 있었다. 오스발은 팔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모두들 정신차려요！ 정신차리라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