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48)
기사입력 1999년 04월 27일 15시 03분
라이온은 무의식 중에 상체를 뒤로 눕혔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떠미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주춤거리며 중심을 회복한 라이온은 위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휘몰아 움직이며 갈갈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 빠른 움직임을 보던 라이온은 상공에 불고 있을 바람의 세기를 추측하며 헛바람을 삼켰다. 곧이어 수면 위로도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며 배가 롤링을 시작하자 라이온은 다시 비틀거려야 했다.
그러나 선단을 덮친 돌풍은 앞으로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의 후류풍 정도였을 뿐이다. 질풍호의 선수에 꼿꼿이 선 트로포스는 이를 악문 채 바람을 앞으로 쏘아내고 있었다. 그의 옷은 사납게 나풀거리고 있었고, 그의 지팡이에선 이제 파르스름한 빛이 번져나오고 있었다.
트로포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돌풍은 눈에 보일 정도로 거세었다. 선단 곳곳에서 선원들을 진정시키려고 선장들이 내지르는 악다구니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하리야 선장은 꼿꼿이 서서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신이여, 미혹에 물든 당신의 자손을 용서하소서. 당신의 크나큰 분노를 모르는 자를 용서하소서. 당신께 돌아갈 자손을 용서하소서…."
하리야는 선단 전체의 해적들을 대신하여 신께 사죄드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고마워하고 있는 해적은 별로 없었다. 담대한 해적들은 불안감 속에서도 트로포스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하아앗！ 모두 날려버려라！"
미쳐 날뛰는 야생마의 고삐를 잡아채듯 트로포스는 힘있게 바람을 끌어당겼다. 사방으로 흩어지던 돌풍은 트로포스의 손에서 장대한 채찍이 되어 안개를 후려갈겼다. 질풍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는 갈갈이 찢겨져 흩어졌고, 전방 수 마일에 걸쳐 푸른 바닷물과 검은 해안 절벽의 윤곽이 드러났다. 트로포스는 지팡이를 그대로 지휘봉처럼 휘두르며 외쳤다.
"빌어먹을 해적놈들아, 가자！"
"예！ 선장님！"
질풍호의 노잡이는 즉시 북을 두드렸다. 노들이 바닷물을 때리자 질풍호는 갈라진 안개의 틈 사이로 천천히 들어섰다. 트로포스는 그의 마법에 의해 눈 앞에 드러난 미노만의 모습을 침착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어느새 자신의 왼손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왼손 손등에는 흰색의 작은 점이 다섯 개 있었다. 트로포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손등을 내려다보았고, 잠시 후 피부 밑에서부터 솟아나듯 여섯번째의 점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여섯개의 점은 마치 시계 문자판의 1시부터 6시까지의 위치처럼 트로포스의 손등 위에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제기랄, 또 생겼어. 열두개가 되면 도대체 무슨….' 트로포스는 불안한 눈으로 오른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지팡이는 이제 평범한 보통의 지팡이처럼 그의 손에 공손히 쥐어져 있었다. 트로포스는 어금니를 사려물었다. `쳇. 열한번만 쓰고, 그리곤 바다에 처넣어 버리는 거야. 그럼 제까짓 게 어쩔 거야.' 트로포스는 자신이 말하는 `제까짓 것'이 누군지 몰랐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트로포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전방의 바다를 응시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