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멀고 험난했던 FIFA부회장 선거
기사입력 1999년 04월 26일 15시 14분
93년 12월 FIFA의 위세를 실감하고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5개월 후인 94년 5월에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되도록 되어 있었다.
FIFA는 회장을 비롯한 21명의 집행위원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되어 있으며 월드컵 개최국 결정도 집행위원회의 소관 사항이었다.
만약, 내가 집행위원이 되면 벌써 한 표가 확보되는 것이고, 200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 예정일인 96년 6월까지 앞으로 2년여의 기간이 남았으니까 그 기간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10명만 우리편으로 확보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일본은 벌써부터 무라타가 입후보하기로 하고 득표활동에 들어가 있었고 중동에서도 후보가 나온다는 정보가 있었다.
나는 FIFA부회장 선거에 앞서 오완건 대한축구협회부회장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오완건부회장은 AFC 부회장 선거에는 두번 입후보 한 경험이 있었다.
그 중 한번은 1표 차이로 낙선되기도 했지만, AFC 내의 사정에 대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험이 풍부한 분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승산이 없는 일이라고 만류했다.
공연히 망신하지 말고 포기하라는 충고였다.
나는 오부회장에게 다시 물었다.
"월드컵 유치와 FIFA 부회장 당선 중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그야 부회장 선거이지요."
"쉬운 것도 못하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을 하자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쉬운 것부터 합시다. 쉬운 것도 성공 못하면 그때 가서 정부에 건의해서 월드컵 유치도 그만 둡시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까지 한국 축구외교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93년 6월 축구협회 회장 취임 인사차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FIFA 하우스를 방문하자, 아벨랑제 회장은 "My President! 축구협회회장 취임을 축하합니다."고 말하면서 따뜻하게 맞이 해주었고, 블래터 당시 사무총장은 "정회장이 한국축구협회회장으로는 FIFA 하우스에 처음 찾아온 분"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FIFA 부회장의 자리에 출마 등록을 마친 사람은 쿠웨이트의 쉐이크 아마드, 카타르의 함맘축구협회장, 일본의 무라타 AFC부회장등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특히 쉐이크 아마드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는 전임 FIFA 부회장이었던 쉐이크 파하드의 아들인데 이미 아버지가 맡았던 IOC 위원과 아시아 올림픽평의회(OCA) 의장등 스포츠 관계의 모든 직위를 물려받고, 마지막으로 FIFA 부회장도 차지하여 부친의 유업을 잇겠다고 출마한 것이었다.
나는 쉐이크 아마드를 만났다.
"당신은 이미 OCA 의장 등을 맡아 아시아 체육계의 최고위 인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FIFA 부회장 선거에는 나오지 말고 나를 지지해주시오."
그러나 쉐이크 아마드는 다른 직책을 다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는 꼭 차지해야겠다며 강한 집념을 보였다.
그는 아랍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기도 했다.
카타르의 함맘 역시 국왕의 측근으로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았고 일본의 무라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카타르는 당시 걸프전의 후유증으로 중동지역이 분열된 정세속에서, 왕실이 주동이 되어 독자외교를 표방하고 있었다.
사우디, 쿠웨이트등 어느 진용으로 부터도 거리를 두는 독자적인 노선을 모색하고 있었다.
카타르 왕실에서는 그 당시 스포츠외교의 중요성을 인지, 함맘을 지원했다. [월．화 연재]
